지난 8일 한밤 중에 울산 남구 달동 33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에서 발생한 큰불은 갈수록 많아지는 초고층 빌딩이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면서 높다란 건물 전체를 불기둥으로 만들어버린 눈앞의 현실에 울산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초고층 빌딩 화재에 대한 예방과 진압 대책, 제도 등을 전면적으로 다시 수립해야 할 것이다.

울산지역에는 30층 이상 공동주택이 32곳이나 된다. 이 곳에는 2만1670가구가 살고 있다. 이중 40층 이상 공동주택만 해도 10곳에 가깝다. 아파트를 포함한 30층 이상의 빌딩은 100여개를 넘는다. 그러나 이들 고층건물들은 화재가 발생하면 진압에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고가굴절사다리차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울산지역에 고가사다리차가 없어 부산에서 고가사다리차를 울산으로 이동시키는데 6시간이나 걸렸다. 6시간이면 어지간한 건물은 다 태우고도 남는 시간이다.

울산과 대구, 광주는 30층 이상의 건물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고가굴절사다리차가 아예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가사다리차는 70m 이상 화재진압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이지만 구입이 미뤄져왔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이같은 상황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와 협의해 내년에 울산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송시장의 약속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번 화재의 또 하나의 문제는 외벽의 구조적인 화재 취약성이다. 울산소방본부는 “건물 외장재가 당초 알려진 드라이비트와 달리 알루미늄 복합 패널로 확인됐다”며 “패널 속에 숨어 있던 불씨가 간헐적으로 불특정 층에서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이미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드라이비트 뿐 아니라 알루미늄 복합패널도 판과 판 사이를 실리콘 같은 수지로 접착하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알루미늄 복합패널이 녹고 그 사이로 불씨가 들어가 화재를 더 키웠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진단이다. 고층 건물 외벽의 자재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

이번 화재에서 그나마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해준 것은 중간 대피층이었다. 건축법은 50층이나 200m 이상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 중간 대피층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33층으로 대피층이 의무사항이 아니었는데도 15층과 28층에 대피층을 만들어 두었기에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30층 규모의 공동주택이 증가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대피층 의무화를 50층의 초고층이 아니라 30층까지 낮추는 등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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