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 가졌지만
외래어 오남용·희한한 혼용 당연시돼
말이 예뻐야 글이 예쁘듯 제대로 써야

▲ 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한글은 의심할 여지없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중 하나이다.” 영국의 언어학자 제프리 샘슨은 한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정도 표현은 예사다 싶을 정도로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에 대해 극찬하는 학자가 많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처럼 고유의 문자가 없는 나라에 보급되어 문맹을 깨우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도 근대화 과정에서 한글사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바 있다고 하니 놀랍고 신기하다.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 중에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한글은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기록 되어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휴대폰으로 따지자면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인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이고 탁월한 가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한 번 더 입증되었다.

올해 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1인치의 자막장벽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막의 불편함을 넘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막조차 넣지 못하고 자기네 말로 덧씌워야만 영화를 볼 수 있는 나라가 더 많은 이유도 한글과 같은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권의 알파벳도 순간순간 지나가는 장면의 대사를 다 담기에는 부족함이 있고 한자는 너무 다양한데다 복잡하며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자막을 넣기가 마땅치 않다고 한다. 이렇듯 당연히 써온 우리글이 얼마나 편리한지 그래서 또 얼마나 고마운지에 대해 굳이 따질 필요가 있나 싶지만 한글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우리는 명품글자의 사치를 누리고 있는 샘이니 한글은 그 값어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저의 문맹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실질문맹률’이 세계 꼴찌 수준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실질문맹률은 문장이나 문서 따위를 이해하는 ‘문해률’을 말한다. 이 문해률이 낮다는 것은 글자는 읽을 줄 아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글자를 가진 우리가 외국어도 아닌 우리글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안 가지만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즈려밟고’가 어떻게 밟아야 하는 것인지 상상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고 정답만을 찾아 헤매다 보니 책이라면 모두 교과서 같아 보인다.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말도 외래어 없이는 대화가 안 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저 선수는 피지컬이 달라” “이번 학기의 커리(커리큘럼)는 좀 더 디테일하게 짜야 돼” “패널 여러분의 컨센서스가 중요해 보입니다.” “고객님 스트로는 왼쪽 테이블에 있습니다.” 등과 같이 외래어의 오남용이 너무 당연시 되어 버렸다.

텔레비전, 컴퓨터, 인터넷처럼 적당한 우리말이 없으면 그대로 써야 한다. 굳이 어색한 순화로 우리말이 촌스럽다는 오해를 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말의 맛을 더하거나 약간의 아는 척을 하는 경우라면 애교로 넘길 수 있지만 사용하는 외래어를 다시 우리말로 바꾸지 못하고 단어마저 잊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왔다는 것에 심각성을 가진다. 이런 지적이 시대적이지 못한 핀잔쯤으로 들려서는 안 된다. 말뿐만 아니라 글도 희한한 혼용이 재미삼아 이루어지고 있는데 ‘Aㅏ’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다. 감탄사로 쓰이는 이것은 ‘아’라고 읽는다. 이렇게 쓰는 것이 유행이고 이렇게 써야 더 ‘아’하고 감탄하는 것처럼 보인다니 창의적이라 해야 할까? 시대에 맞게 융합이 잘 이루어졌다 해야 할까? 오히려 말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이 생기고 글이 생겼다. 그래서 말은 글의 부모이다. 말이 훌륭해야 글도 예뻐진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글자를 가졌다 해도 말이 흔들려 글도 온전하지 못해지는 것을 경계하며 앞으로의 우리말과 글이 말값 글값 제대로 하는 시대를 바라본다. 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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