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광 울산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초등학생 때 일이다. 반에서 짝을 바꿀 때마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을 세워놓고 키를 쟀다. 그 시절만 해도 키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했던 때인데,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고 뒤꿈치나 머리를 높이 들곤 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가진 못했다. 다시 짝을 바꾸게 된 어느날, 평소 필자와 짝이 되고 싶었던 한 학생이 키를 맞추기 위해 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학업 성적과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았던 그 친구가 나름 모범생이었던 나와 짝을 하면 좋겠다는 판단에서 선생님은 이를 못 본 척 넘어가 주었고, 그 친구는 짝이 됐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은 저서 <리더십 골드>에서 이렇게 썼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판단할 때와 남을 판단할 때, 완전히 다른 이중잣대를 적용한다. 남을 판단할 때는 그의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 반면 자신을 판단할 때는 ‘의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가 잘못을 범하더라도, 우리 의도가 훌륭했다면 쉽게 용서한다. 즉, 나와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거기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잣대는 자로 쓰는 막대기 혹은 어떤 문제나 현상을 판단할 때의 기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는 어떤 대상의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이므로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도 눈금의 간격이 일정해야 한다. 내면의 잣대 또한 마찬가지다. 명확하고 공정해야 하며, 누구든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필자의 본업에서도 어떤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든 누구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인정받도록 행정안전부에서 관련 지침을 마련하고 1365 자원봉사 포털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명예적으로 평가를 받을 수는 있어도, 유명인이라서, 부모님이 유력 인사라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해서 봉사시간을 더 받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는 일이 만연한 것 같다. 같은 잘못을 했어도 내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 못 만나서 그렇다고 탓하는 부모들도 있고, 내가 교통신호를 위반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다른 사람이 위반하면 몰상식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런 일상의 일 뿐만 아니라 내로남불은 어느 정권을 불문하고 정치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며 여전히 격론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법무부, 검찰, 판사, 재판 등의 사법적 단어들이 일상의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요즘 법 앞에 평등하다는 잣대가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생각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법적, 도덕적 기준을 다르게 적용시키는 이중잣대로 인해 불공정이 공정화되고, 몰상식이 상식화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중잣대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단지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중잣대를 들이댄 결과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일이라 했다. 어려운 일이지만 나에게도 남에게도 이로운 기준이 명확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채근담의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명언처럼 말이다.

정보광 울산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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