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시월의 하늘은 쪽빛이다. 들판은 넓어졌고 하늘은 높아졌다. 이는 황금빛 들판과 쪽빛 하늘이 대비를 이루기 때문인데, 이 아름다운 색깔의 대비는 점차 선명해져서 시월이 되면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들판은 더욱 넓어지는 것이다. 눈부시게 맑은 가을빛이 듬성해진 잎들 사이로 바람처럼 지나간다. 가을빛이 지나간 잎들마다 초록은 풀어져 단풍으로 얼룩진다.

행복은 ‘사이(between)’에서 온다고 했다(조나단 헤이드). 나와 너, 나와 사회, 나와 자연의 사이. 행복은 사이에서 오지만, ‘나’와 ‘나 아닌 것’과의 사이가 잘못되거나 단절될 때 인간은 우울해진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자 자연의 일부다. 오랜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감은 결국 ‘코로나 블루’이라는 또 하나의 질병을 유발했다. 우울증은 정신과 육체를 힘들게 한다. 슬프면서 비관적이다. 의욕은 상실되고 육체는 무기력해져서 손가락하나 까딱하기 귀찮다. 우울증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관계가 복원될 때 우울은 개선될 것이지만,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기에는 아직도 멀어만 보인다.

오늘도 시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다. 블루(blue)는 은유로서 우울을 상징하지만 실제 색깔로서의 블루는 우울을 달래고 치유하는 효과를 지녔다(Linda Lauren, color therapy during the pandemic. July 28, 2020).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미당 서정주)는 것은, 눈부시게 푸른(blue) 쪽빛 하늘이 그리움에 사무친 아픈 마음까지도 달래주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억새가 출렁인다. 소슬바람에 슬피 우는 억새도 하늘을 우러러 우울을 달랜다. 우리는 일상적인 세계 속에서 삶의 대부분을 살아가지만,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는 순간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무엇보다 큰 희열을 맛본다(에머슨, R.W.Emerson). 나와 자연의 ‘사이(between)’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여, 바라보고 느끼는 순간 소원했던 ‘사이(between)’는 원상태로 복원되며, 자연을 통해 나는 다시 행복감을 느낀다. 오늘도 시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한낮의 우울을 달래며 가을이 영글어 간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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