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무차별적인 생산과 유통
유신체제의 기본구조·논리와 유사
개념없는 정치세력의 주술로 활용

▲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요즘 세태를 보자면 ‘신화 만들기’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온갖 주장과 대항 주장이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 겨룬다. 혹독했던 시절의 신화(가짜 뉴스) 생산자는 정권이고 유포자는 언론이었다. 지금은 생산자와 유포자가 언론과 권력기관, 그리고 다양한 개인이다.

‘공인된’ 사실 이외에 다른 것을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이제는 무차별적으로 ‘거짓’ 사실을 제작하고 유포한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박탈감, 분노, 적개심, 사익, 무지, 부도덕, 그리고 ‘박제된’ 정의감이 자리하고 있지 싶다.

문제의 심각성은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이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이미 정치이고 사업이며, 심지어는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은 외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 구조와 논리가 독재정권의 그것과 유사해 보인다.

유신체제가 현대사에 새겨놓은 상처와 기억은 여전히 국민 다수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그것은 분출된 분노를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억누르고, 부당한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이적행위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이런 일이 정당하다고 믿도록 국민을 세뇌시켰다. 그렇게 한국사회의 문법이 된 유신의 문화가 악의적 가짜 뉴스와 개념 없는 정치세력에게 주술(呪術)이 되고 있지 않나 걱정이다.

물론 유신체제는 박정희의 추종자와 비판자에게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여기서는 다만 국가안보와 관련된 유신의 신화 속 ‘진실(fact)’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2년 10월17일 박정희는 유신을 단행했다. 국민 다수는 그 원인이 “침략적인 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 때문에, 혹은 ‘영구집권’을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전자는 1971년 12월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동원한 수사(rhetoric)이고 결국 후자처럼 되었기 때문에 착각이든 결과론적이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특별선언에서 유신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미 데탕트 속에서 ‘열강이 제3국이나 중소 국가들을 희생의 재물로 삼는 일’이 있을 수 있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의 재단 위에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지 오래’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민족의 숙원을 해결하려는 남북대화마저 ‘위헌이다 위법이다 하는 법률적 또는 정치적 시비’를 걸고 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개척해 나가지 않을 수 없으며’ 지금은 남북대화를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박정희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 주장 자체는 당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첫째,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불사했다. 앞서 언급한 ‘누구도’ 전쟁 재발을 장담할 수 없다거나 우리 운명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말은 미국의 정책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길을 가겠다는 의미였다. 7·4공동성명을 “대단하고 용기 있는” 시도라고 높게 평가했던, 미국은 그의 제거를 고민할 정도로 유신에 분노했다. 둘째, 북한이 오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배려했다. 유신이 있기 전후 남측은 북측에 사정을 전했다.“기존 헌법은 ‘반공주의 원칙을 담고 있어 남북대화를 받아들일 수 없고’, 유신헌법은 남북대화의 ‘법적 토대로서’ 기여할 것이다. 1970년대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을 달성하기’를 원한다. 북측은 남측의 말을 믿었다.”

놀랍게도 박정희는 통일을 명분으로 ‘반미친북’을 선택한 셈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창조적 사유와 접근이 요구되는 ‘문화의 시대’에 추앙과 증오의 대상인 그에게서 긍정적 아이디어를 찾아내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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