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햇살이 가을의 프리즘을 통과하고 있다. 빛이 닿는 곳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그해 가을처럼 올해도 그 자리에 새하얀 구절초가 피었다. 산 너머 흰 구름만 바라보는 꽃(선용 구절초).

들판은 아름다운 색(色)으로 가득하다. 색은 빛이 사물에 닿을 때 생겨나, 봄빛에는 언제나 푸르고 가을빛은 언제나 노을 진 물결 같다. 뭉쳤다 풀어지고 풀어졌다 뭉치며 빛은 색이 되어 물결처럼 흘러간다. 흘러가는 색과 함께 가을이 저물어간다.

모든 것을 빛이 주관한다. 본다는 것은 빛을 지각하는 것이다. 색은 빛이라는 전자기파의 주파수(진동의 속도)이다. 빛의 파동이 더 빨리 진동하면 빛은 더 파랗게 되고, 조금 더 느리게 진동하면 빛은 더 붉어진다. 우리가 지각하는 색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식별하는 우리 눈의 수용체가 생성해 낸 신경신호의 심리 물리적 반응이다. 사물이 의식의 한 형태라면 빛은 내 의식이다(피터 러셀, 과학에서 신으로, 북하우스 퍼블리셔스, 2017).

빛이 있어 색이 있고, 빛이 사라지면 색도 사라진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저것이 사라지니 이것 또한 사라지는 것이 존재세계의 실제모습이고, 이것(緣起)은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물리학적 법칙이다. 아무것도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어서 안정되고 불변하는 ‘나’라고 할 만한 알맹이(自性)가 없다. 자성이 없이 현상(幻)으로서만 존재하니 연기(緣起)하는 모든 것은 공(空)한 것이다(諸法皆空). 그러나 공(空)한 것이라 하여 없는 것이 아니다.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존재양식이며, 우리가 일상의 삶을 더 효율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 의식에 나타나는 이 상(象)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홍창성,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불광출판사, 2019).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 즉 하나의 방편(方便, convenient means)으로서 자성 없이 공한 현상(幻)을 실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봄빛이 소멸한 공간에는 가을빛이 가득하고 곱게 물든 단풍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연기하는 모든 것이 공한 것일지라도, 오늘도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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