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식을 장식한 〈싸이퍼〉가 28일 일반 관객에게 선보인다.

 1999년 부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극장가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큐브〉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4년 만에 연출한 두 번째 장편영화다.

 주인공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며 탈출구를 찾던 전직 회계사 모건 설리번.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 디지콥의 산업 스파이로 스카우트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위조 아이디를 부여받고 두뇌를 개조해 거짓말 탐지기까지 거뜬히 통과한 뒤 무역회의등에 참가하며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동양 여인 리타가 나타나 디지콥이 세뇌용 약을 통해 그의 자아를 잃게 만들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알려준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지 말고 오직 나만이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모건은 이제 선웨이의 스파이가 돼 이중간첩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콥은 그가 선웨이의 눈을 완벽하게 속였다고 믿고 있지만 선웨이는 이를 역이용해 정보를 빼내려고 한다. 장자의 나비 꿈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자신을 둘러싼 음모에서 벗어나려는 모건.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은 감독이 쳐놓은 덫에 걸려 미로를 헤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만7천576개의 연속된 정육면체 방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는 7명의 이야기를 그린 〈큐브〉. 이번에는 폐쇄 공간에서 벗어나 3차원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미노스의 미궁에서 테세우스를 빠져나오게 만든 것이 아드리아네가 건네준 실타래였다면 5천700초(95분)의 시간으로 이뤄진 기억의 미로를 통과하는 열쇠는 무엇일까.

 주인공 모건과 리타 역은 영국의 연기파 배우 제레미 노담과 〈미녀 삼총사〉의 스타 루시 리우가 맡았다.

 공간의 확장과 인기 배우의 등장, 그리고 몽환적이면서도 첨단세계를 상징하는 분위기의 세트와 특수효과에도 불구하고 〈싸이퍼〉의 매력은 〈큐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나치게 꼬아놓은 듯한 줄거리는 관객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마지막 반전도 관객을 허탈하게 만든다.

 데뷔 시절 천재감독이 작품을 거듭할수록 평범한 감독으로 전락하는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안타깝다.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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