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숙 울산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장

잘못된 일을 알리는 ‘휘슬블로어’는 ‘공익제보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휘슬’은 휘파람이고, ‘블로어’는 바람을 부는 사람이나 장치를 말한다. 19세기 영국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어 시민과 동료들에게 위험 상황을 알렸던데서 유래한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흔히 양심선언 또는 제보자라고 불린다.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부패·불법·비리 등 불합리한 일들을 시정하기 위해 내부 책임자 또는 감사 부서에 휘파람을 부는 것이다. 근간에는 성인지, 갑질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휘파람을 분다.

불합리한 갑질문화에서 휘파람 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분노는 화병이 된다. 조직 내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 대해 하는 갑질,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하는 갑질, 공직자가 민간에 휘두르는 갑질 등 갑질은 생활 곳곳에 만연해 있다. 권력이 있으면 죄가 없고, 권력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웃픈’ 사실이 함부로 휘파람을 불 수도 없게 한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육법전서(六法典書·민법·형법·상법·헌법·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에도 없는 ‘괘씸죄’가 있다. 괘씸죄야 말로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인 정의보다 직장에서 안전하게 자리 지키며 밥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한 을(乙)들은 화병을 품고 산다. 휘슬블로어는 개인의 윤리의식과 양심에 따르는 행동인데도 제보를 배신이나 항명으로 여기기 때문에 조직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내부제보자를 보호하는 법이 제정돼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부터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공공기관 내부제보자 보호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켜 놓고 있다. 이처럼 법과 제도의 틀 안에 다양한 장치를 해 놓았지만 정작 정의보다는 조직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세력들 때문에 휘파람을 불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조직의 불합리한 일들을 제보한 용감한 ‘휘슬블로어’들이 많이 있다.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 실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업계의 로비에 밀려 중단된 사실을 폭로한 감사관,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세상에 알린 군인 이병, 대기업 비자금 사실을 폭로한 변호사, 검찰 조직 내 부당함을 제보한 검사들도 있다. 이런 용감한 휘슬블로어 덕분에 우리 사회는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상 ‘디케’는 한 손에는 사회의 부당(不當)함을 제재하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법의 형평성을 의미하는 ‘저울’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어느 한쪽 편견에 휩싸이지 않도록 두 눈은 수건으로 가린 채 서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에도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오른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왼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으며, 눈은 가리지 않고 있다.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법을 통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뜻은 같다.

국가의 근간을 지탱하는 법이 권력과 기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대로 적용된다면 괘씸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휘파람을 불 수 있을 것이다.

최명숙 울산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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