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군 웅촌면의 9개 법정동리 중 하나인 초천리(椒泉里)는 영조 25년(1749) 학성지(鶴城誌)에 "초정유석정기미여초고명(椒井有石井基味如椒故名-초정에는 돌샘에 물이 나는데 그 맛은 제피나무 맛과 같다)"이라 적혀 있어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본래 울산군 웅촌면 지역으로 약물 초정(椒井)이 있었으므로 초천 또는 초정이라 하였는데, 초천리(椒泉里)는 정조 때 초정리(椒井里)라 하였고, 고종 31년(1894)에 초정동(椒井洞)과 내기동(內基洞)으로 갈라져 있었던 것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를 합하여 초천리라 하였다.

 초정 또는 초천은 회야강변에 있는 약수천(藥水泉)으로, 천연으로 된 석함(石函) 속에서 솟는 거품 섞인 약수는 겨울에는 따스(冬溫)하고, 여름에는 시원(夏冷)했다. 그 맛은 신산(辛酸)하여 마시면 체증이 내려가고, 목욕하면 풍(風)을 고쳤으며(治風通滯), 또 설탕을 타면 사이다 맛이 나 여름철 청량음료가 되기도 했다. 해방 후 한 때 이 약수로 오복사이다를 만들어 시중에 판매한 일도 있다. 초천의 "초(椒)"는 향기롭다는 뜻이다.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한강 선생 정구(鄭逑)는 이곳까지 와서 목욕을 하고 갔으며, 선조시(宣祖時) 노계 박인노 (蘆溪 朴仁老) 선생은 시조를 한 수 남기고 있다.

 "신농씨(神農氏) 모를 약(藥)을 이 초정(椒井)에 숨겼던가/추양(秋陽)이 쬐이는데 물속에 잠겼으니/회점(會点)의 욕근기상을 이제 본 듯 하도다/홍진(紅塵)이 뜻이 없어 사문(斯文)을 님을 삼아/계왕(繼往) 개래(開來) 하야 오도(吾道)를 맡키시니/천재후(千載後) 회암(晦菴·주자) 서생을 다시 본 듯 하여라"

 최첨단의 물리탐사기법을 응용한 지하구조 전문가들이 울산단층대를 중심으로 발달된 여러 단층들에 대하여 탐사 분석한 결과, 충적층의 경계와 지하수면으로 보이는 굴절면과의 두께가 약 30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하층에서는 함수화(含水化)된 지하수가 기반암과 충적층 사이에서 지하수면에 따라 흐르게 되는데, 그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모두 약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느 경계지점에선가 그곳의 광물이 다량 함유되어 약수로써 지표면으로 분출된다고 보는데, 바로 그 지점이 초천리(초정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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