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망설이다 구조된 학생이든
말기 암환자든 삶과 죽음 무게는 같을듯
벼랑끝에선 가족들의 보살핌이 큰힘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목요일 점심 저는 말기 암환자인 누나의 임종이 다가온다는 회진 결과를 듣고 검은 정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상담선생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찾습니다. 자살시도 중에 구조된 학생에 대한 도움을 부탁하십니다. 이 학생은 자살시도를 망설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중에도 그 불안한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학생들이 위험한 순간을 막아내고 도움을 청한 모양입니다. 낯선 타인을 공들여 관찰하고 사고를 막아낸 학생들은 생명을 구한 의인입니다.

학생은 경직된 모습이었습니다. 말도 잘 안 나올 정도로 몸이 얼어붙은 것 같습니다. 혹시 죽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끄덕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사람들은 그런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지난해 옆 건물에서 발생한 사건도 들려줍니다. 투신을 했지만 다행히 차 위로 떨어져 죽지 않았고, 잘 치료받아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많은 시도자들이 회복 후 “그때는 왜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알려줍니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은 다음 월요일 아침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도 저도 바쁘다보니 약속이 늦게 잡혀 만나기도 전에 사고가 날 뻔 했던 것이죠. 지도교수님은 최근까지 잘 지내며 좋은 성과를 냈던 학생이라 이런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시지 못했답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바로 운전해서 병원으로 오겠다고 하십니다. 부모님께는 최근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라 부모님도 긴장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안전을 위해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님들께 입원을 부탁드리고 보호자로 상담선생님 두 분, 행정직원 한 분과 함께 응급실로 보냅니다. 그런데 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들로 붐벼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면담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연락이 옵니다. 급기야 응급실 교수님과도 직접 전화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응급실 상황을 듣게 됩니다. 그래도 자살시도에서 구해낸 환자인데 소홀한 것이 아닌지 속이 상합니다. 이런 푸념을 들은 다른 대학 응급의사인 제 동서는 요즘 유명인 자살 등 힘든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하루에도 자살시도로 다쳐서 오는 사람이 여럿이라 다치지 않은 상태면 순위가 밀린다는 현실을 알려줍니다.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 누나의 호흡이 더 거칠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오전까지 상태는 그대로 유지되어 머리 희끗한 원장님은 오늘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하십니다. 조금 지나 조카들이 도착했습니다. 추석을 집에서 보낸 엄마를 이후에는 집에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난주에 처음 병문안을 왔는데, 그 때와 달리 엄마는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중3 첫째는 묵묵히 엄마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초6 둘째는 계속 죄송하다며 이제는 엄마를 보내드려야 되겠다고, 엄마를 안 보내려는 것은 내 욕심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일곱 살 막내는 인사를 못 하겠다며 울먹입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있으라고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식사를 계속 못한 매형을 병원식당으로 보냈습니다. 조금 지나 안정적이던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남편이 곧 온다는 얘기를 하니 다시 안정을 찾습니다. 돌아온 남편에게 방금 전 상황을 설명을 하는 사이 호흡이 멈춥니다. 맥은 더 이상 잡히지 않습니다. 의료진을 호출합니다. 원장님이 오셔서 선고를 하십니다. 아이들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사이 어렵게 입원한 학생이 병동이 불편하다며 부모님과 퇴원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자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 그러자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럴 수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 어머니 연락처를 알아내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학교로 바로 복귀하겠다는 조바심이 이 병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을 드립니다. ‘자녀의 쫓기는 마음’을 따르지 말고 ‘자녀를 올바르게 보호하는 마음’을 부탁드리니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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