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옥 호계고 교사

일 년 내내 꼬인 매듭처럼 제대로 안 풀리는 아이 몇이 있다. 번번이 꼬일 상황이 생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고도 구경하러 온 모양이다. 와서는 방해를 버릇처럼 일삼는다. 이번에는 안 되겠다 싶다.

제5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특별전 기간에 토·일 이틀 간 영화 속에서 살았다. 영화에 머물며 지금 내 삶을 살폈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는 도시 교사 유겐은 루나나에서 지내는 동안 선생님으로 산다. 루나나에서 선생님은 우리의 미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다.

부탄에서도 가장 멀고 높고 외진 마을 루나나 사람들은 젊은 도시 교사 우겐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극진하다. 유겐은 교사 옷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 여기며 조국 부탄을 떠나 먼 곳 호주에서 가수로 살기를 바라는, 하루하루 그날을 기다리며 불만스런 일상을 버티며 지내던 인물이다. 교육부와의 남은 계약 기간 1년을 채우려 멀고 높고 외진 루나나 마을 학교의 교사로 어쩔 수 없이 갔던 것이다. 그곳에서 영롱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 영혼 펨잠을 만나 선생님으로 산다.

가을겨울학기 독서 과정형수행평가로 책 한권 끝까지 읽기를 잡았다. 한 권이라도 깊게 읽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한 공부거리이다. 여름 방학 전에 스스로 고른 목록을 도서관 도서 구입 예산으로 마련했다. 거의 두 달 넘는 동안 곁에 두고 읽으며 독서 일지를 열 번 썼다. 수업 시간에 읽은 책 이야기를 들려주고,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서평 형식에 담아 마무리했다. 여덟 개 반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책 이야기를 못 한 아이들에게 따로 기회를 주어 한 자리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한 시간 만에 중단했다. 선의가 늘 선의로 끝나지 않는다. 화요일 그날, 다음날 직접 관련된 아이 둘과 따로 얘기를 나누고 불편한 마음을 풀었다.

수요일, 4교시가 없어 밥 먹으려고 나서려던 참인데 선생님 한 분이 학생부 교무실로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수업 방해가 심한 이 아이들을 좀 맡아달라는 것이다. 한 아이와는 나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던 아이여서 다른 교실로 조용히 가자고 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 말은 들을 필요가 없어서 그래요. 선생님은 왜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앞으로도 그럴 건데요. 선생님에게만 그럴 건데요. 그냥요.”

“교직은 매일 마음의 상처를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잃는다. 반드시 교실에서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을 느껴야만 용기를 잃는 것은 아니다. 칠판에 문장 분석을 하거나 수학증명을 풀고 있을 때, 학생들이 졸거나 쪽지를 돌리기만 해도 교사는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과목이 아무리 기술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르치는 것은 결국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이 나의 자아의식을 형성한다. 다른 많은 직업들과는 달리, 교직은 개인의 생활과 공적 생활이 교차하는 위험한 지역에서 이루어진다.”(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마치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 이 구절이 약처럼 다가왔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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