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숙 울산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장

또 한 살을 마무리하고 새로이 한 살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잇값 해라’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뭔가 실수 한 것이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나잇값을 제대로 하려면 그 나이에 맞는 겸양의 격을 갖추어야 한다. 겸양(謙讓)은 겸손한 태도로 양보하여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이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무조건 참고 견디며 자기를 낮추는 인내와는 다르다. 화(?)를 자초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지 못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겸양에 내포된 의미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보편적 공공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뜻도 있다. 겸손과 양보 즉 겸양은 곧 존중과 배려라 할 수 있다.

작년 4월 삼성그룹 입사 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 언어논리영역에 ‘겸양하다’의 반의어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젠체하다(잘난 체하다)’였다.

겸양의 반의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교만, 거만, 오만, 자만으로 뜻이 비슷하지만 쓰임이 다르다. ‘교만’은 자신의 지위 높음을 자랑하여 뽐내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이고 ‘거만’은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거들먹거리는 모양새를 말한다. ‘오만’은 태도나 행동이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긴다는 의미이고 ‘자만’은 스스로 과신하여 겸손하지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옛날 세도가 주변에 서성거리던 잡배들의 오만방자함은 겸양의 반의어를 모두 지녔다고 보면 된다.

권력의 언저리에서 잡배들이 휘두르는 집단 횡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권력을 쥐면 놓지 않으려는 습성은 그 권력이 주는 고충보다도 힘이 주는 달콤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고도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또는 뺏기지 않기 위해 주도권 투쟁을 하는 작금의 세태는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는 국민에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겸양지덕의 필요성은 더 명료해졌다. 올라갈 때의 영광보다 내려올 때의 찬사가 더 빛남을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변화가 필요하다.

승리할 때가 정말 위험한 순간임을 깨닫게 하는 우화(寓話)가 있다.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둘은 한참 싸웠고 마침내 승패가 결정됐다. 싸움에서 진 수탉은 깊은 상처를 입고 고개를 숙이고 어둑한 구석으로 숨어 버렸다. 반면 이긴 수탉은 암탉을 차지하게 된 기쁨과 승리에 도취해 높은 담장 위에 올라가 큰소리를 지르며 자랑했다. “꼬끼오~! 이 세상은 이제 내 것이다.” 그때 그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눈 깜짝할 사이에 담장 위의 수탉을 낚아채 가버렸다. 결국, 싸움에서 진 수탉이 슬그머니 암탉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승리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조심해야 하고, 겸양해야 한다.

우리는 때론 틀린 의견 때문에 옳은 의견이 뭔지를 알게 된다. 개개인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다중지성을 모아야 하고 제제와 지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한다. 관용은 그 만한 가치가 있을 때 베푸는 것이다.

최명숙 울산시청소년활동진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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