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수현 중남초등학교 교사

요즘 마음이 저절로 향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신박한 정리로 공간을 바꾸고, 나아가 삶을 바꾸자는 취지로 시작된 프로그램에 눈과 귀가 온통 고정되어 버린다. 나만의 공간인 ‘집’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비결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비움의 미학이 빛을 발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비우고 나누며, 집 안 곳곳에 널려있던 물건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재배치하면서, 공간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순간에 모두의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학교와 교실 공간으로 생각의 틀을 옮겨본다.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일반 교실은 긴 복도와 복도 창문이 칸막이가 된 66㎡(약 22평)의 사각형 공간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옥이 공장이나 학교, 병영,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은 것이라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라는 질문으로 학교 공간이 관찰과 통제를 위한 설계임을 규정했다. 관찰받고 통제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삶이 결정되는 공간이 학교이고 교실이라는 것이다.

2020년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가 지식 전달 위주의 관찰 통제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에 대응하는 다양한 학습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학교 공간혁신’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공동체의 요구와 참여를 기반으로 해 삶의 실현을 위한 장소로 학교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

삶의 실현을 위한 인상 깊은 학교가 있다. 학교폭력 예방 연수 차 방문했던 독일 도르트문트 시(市)의 발도르프 학교다. 이 학교 공간 구조와 배치는 학생들의 수업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학년부터 다양한 예술 수업들이 시작되며 6학년부터는 실제 삶의 방향 설정에 필요한 종교수업과 수공수업이 이루어진다. 발도르프 학교의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오페라 극장처럼 연극무대가 설치된 광장을 중심으로 1층부터 4층으로 오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각 학년의 교실이 연결된다는 점이다. 중앙광장의 무대에서 연극 수업을 하는 학생들의 공연을 전 학년이 발코니처럼 이어진 복도에서 자유롭게 청중이 되어 관람하고 피드백을 주고 박수를 보낼 수 있다.

한번 만들어진 건축물은 물리적 투자가 있어야 큰 구조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사용자 참여 설계로 채워져야 한다. 신설된 학교 교실의 다양한 공간 디자인과 학교 공간혁신 사업을 통해 변화한 학교 공간은 교육 방법의 새로운 변화와 맞물려 배움과 채움이 있는 삶의 공간이 되고 있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하는 교실은 어떻게 비우고 채워야 할까? 교실의 비움과 채움을 공간의 사용자인 아이들과 프로젝트 과정으로 다양하게 시도를 해보는 사례들이 많다. 학교 공간혁신 연수를 들으며 때늦은 아쉬움이 든다. 진즉에 아이들과 시도해 보지 않음이 아쉽지만, 앞으로 함께 할 프로젝트 주제가 하나 더 생겼다. 아쉬움은 비우고, 2021년에 해야 할 신박한 주제로 마음을 채워본다.

임수현 중남초등학교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