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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택 울산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많은 울림을 주었고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땀의 아름다움과 인간다운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외쳤던 한 청년의 서럽도록 착한 목소리는 편히 잠들지 못하고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버겁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노동자의 고단함은 1970년 11월 동대문 평화시장의 시공간과 닮아있다.

노동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시민적 권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안전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이 소중한 권리가 지켜지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과 첨단기술의 발전은 제조업 일자리를 점점 축소시키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의 대규모 유행은 서비스 직종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필수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신의 안전과 삶의 위기를 스스로 떠안아야 한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수많은 사람들의 어깨 위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놓여있으며 세상이라는 중력은 그들을 계속 짓누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무게를 나누어 가져야 하며 시민적 권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지방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더욱 두텁게 만들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일자리제’를 도입해야 한다.

기본일자리제는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를 매칭해주는 역할을 하며 재취업을 위한 재교육과 그 기간 동안의 기본 생계비를 책임진다는 정책이다.

현재 고용보험을 통한 실업급여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데 턱없이 부족하고 중앙정부의 지원으로는 재취업을 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기본일자리센터와 같은 컨트롤타워를 구축하여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주민들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기본일자리센터와 같은 기관을 통해 공공부분과 민간부분의 일자리를 육성하고 파편화된 일자리 정보를 통합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매칭시키며 재교육하는 과정을 담당한다면 지역 주민의 삶은 훨씬 더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노동환경의 총체적 변화와 산업구조의 대전환, 이것이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그저 그들의 잘못이라고 방치하는 것과 스스로 삶을 개척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제 지방정부가 나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며 한정된 예산의 범위에서 기본일자리제는 꿈과 같이 이야기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일자리제는 중앙정부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제도가 확대되더라도 변화된 산업생태계에서 탄소세, 로봇세, 데이터세 등을 도입한다면 재원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0년 전 한 청년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 사회는 시민적 최저선이 지켜지는 사회일 것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구성원들이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자기발전의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곧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지금도 불안전하고 미래가 담보되지 못한 산업 현장과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 시장에서 힘겨운 분투의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산업구조의 변화와 모순에 대한 책임을 그대로 감당하고 있다. 이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함께 살기위한 시작, 그것이 바로 ‘기본일자리제’이다. 오상택 울산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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