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언양에서 석남사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상북농협을 지나면 곧바로 등억온천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좌회전해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세화수련장이 있다. 세화수련장 왼쪽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길, 아스팔트 포장길을 차례로 따라 올라가면 버스정류장, 상점과 거리새마을회관이 있는 2층 건물이 보인다. 하동, 간창, 대문각단, 지곡 등의 자연마을로 이뤄진 울주군 상북면 거리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마을을 지나는 천을 하나 지나면 28가구가 살고 있는 간창("倉)마을이 나온다.

 마을 뒤에 있는 응봉산 두응산 고헌산을 비롯해 신불산과 간월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간창마을은 사창(社倉)이 있었던 물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창은 조선시대 각 고을의 환곡을 저장해 두던 창고를 말한다. 〈언양읍지〉(1916, 1919)에 따르면 간창마을은 옛 언양현시대 4개 사창 가운데 상남면의 사창이 있었던 곳이다. 한 때 문화류씨(文化柳氏)가 40여 가구가 세를 이뤄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지금은 28가구 중에 10가구가 류씨 문패를 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태종 10년(1410년) 경북 영천시의 신녕현 현감을 지낸 류혜지(柳惠至)가 간창에 자리를 잡은 이후 후손들이 19대 160호가 번창했다. 류혜지가 간창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마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류씨 재실 영사재(永思齋)에는 처음 간창마을에 뿌리를 내린 류혜지와 후손 류영록(군자감정), 류연창(증공조참판), 류철주(증한성좌윤), 류만욱(수호군) 등 5세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재실은 일본에 건너갔던 류제철씨가 1960년대 초반 음력 10월 둘째주 일요일로 정해진 묘사 때 5일에 걸쳐 100여곳의 묘를 다니며 묘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안을 내 재실을 지었다.

 입향조 류혜지의 17세 주손(종손)인 류제한(73)씨는 "재실이 지어진 이후로 전국 각지로 흩어진 후손들의 결집력이 더욱 좋아져 묘사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100여명이 재실로 모인다"며 "입향조 때부터 잃어버린 묘가 하나도 없어 묘사를 지내려면 5일씩 걸렸는데 재실을 짓고 난 뒤로는 하루만에 지낸다"고 말했다.

 간창마을은 유난히 따뜻하다. 거리새마을회관이 있는 하동마을에서 간창마을에 들어올 때 건너는 간창천만 지나면 한겨울 목을 둘렀던 목도리를 풀고 싶을 정도로 인근 자연마을에 비해 기온이 따뜻하다. 기나긴 동지섣달에도 혹한을 느끼지는 않는다. 류제한씨는 "아마도 입향조인 류혜지 할아버지가 식수를 해결할 수 있는 내(간창천)가 옆에 있는데다 날씨도 따뜻해 간창에다 터를 잡지 않았나 짐작된다"며 "전해지는 얘기로 류씨 외에 김녕김씨, 능선구씨, 해주오씨도 간창마을에 자리를 잡았다가 타지역으로 나간 것을 보면 간창마을이 살기 좋은 마을이 아니었나 싶다"고 전했다. 상북지역 식수검사에서 거리 물이 1급수를 차지해서인지 유난히 장수하는 노인이 많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울산자동차면허시험장에서 공장지대를 지나 간창으로 이어지는 길도 있는데 면허시험장 인근에서 볼 수 있는 "효열비각"은 문화류씨 입향조의 부인 동래정씨의 정려각이다. 정려각 옆에는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남편의 무덤 곁에서 3년간 시묘살이 한 부인을 보호하며 함께 시묘살이를 한 범을 기린 "영호영세불망비"가 있다. 시묘살이 직후 부인이 갈라진 무덤으로 들어가 합장되고 사흘 이후 식음을 전폐한 호랑이가 따라죽었다는 이야기는 언양읍 고 류덕조의 구술로 전해져 내려오다 지난 1963년 경상남도지에 수록돼 전해지고 있다.

 "길천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전 학급의 급장(반장)이 모두 문화류씨일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는 류제한씨의 전언처럼 간창마을 출신 류씨 가운데는 학계에 진출한 후손들이 많다. 입향조 류혜지의 15대손 가운데 김해 서여중 교장을 지내다 퇴임한 고 류진선씨를 비롯해 하선씨가 신정초등 교장을 지냈고, 영선씨는 시청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16대손 제한씨는 학교법인인 상북학원에서 근무했고 의학박사 제계씨는 부산에서 류소아과를 운영하고 있다. 제형씨는 한국수자원공사 과장, 제청씨는 서울에서 차량부속품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17대손 준걸씨는 현재 평창종합건설 회장으로 있고 그의 동생 진걸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류종식씨는 울산중앙여중 교사를 지냈고 영환씨는 창원특수강 부장, 성환씨는 양산여중 교사, 상환씨는 상북면 상광레미콘 영업이사, 동환씨는 주택공사 택지개발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18대손인 문학박사 영달씨는 한국전산원에 근무하고 있고, 공학박사 영석씨는 인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영규씨는 울산상수도사업본부 계장으로 있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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