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어른들은 ‘내 친구가 모 경찰서에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사단장인데, 내 후배가 국회의원인데, 모 시장이 고등학교 선배인데’ 등 인맥 얘기를 하곤 한다. 이 중에는 교사도 들어간다. 여기에 등장하는 직업군은 어디에 가도 명함 내밀만한 직업이니 필자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 선생 친구가 교감, 교장이 되면 주변 사람들은 더 신이 난다.

그런데 교감 친구와 교장 친구는 많아도 장학사와의 인맥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학사가 뭔지 알아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저 이 분들 때문에 학교가 요란해졌던 기억만 떠올릴 뿐이다.

호돌이가 귀여웠던 88올림픽 시절에 장학사가 온다 하면 며칠 전부터 학급 비품이 전부 새 것으로 교체됐고, 대청소에 들어갔다. 학교 교실과 복도는 나무 바닥이라 왁스로 칠했는데, 아껴쓰던 소중한 왁스를 담임선생님이 통째로 들이부었다. 담임선생님의 비장한 표정을 보며 학생들은 그저 ‘장학사가 무서운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예쁜 아가씨의 눈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공포 드라마가 나왔던 90년대에도 장학사 오신 날은 비상사태 그 자체였다. 선생님들이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정장을 입었고, 학생들에게 ‘너 임마 이리와!’가 아니라 ‘학생, 여기 나오세요’ 존대말을 썼다. 큼직한 괘도가 등장했고, 소각로에서 몽둥이 수십개가 불탔다. 대체 장학사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2002년에도 장학사의 위엄은 계속 됐다. 쓰지도 않던 어학실을 개방하고, 학습목표를 색분필로 알록달록 적고, 밖에 먹구름이 있는데도 ‘여러분 날씨 참 좋죠?’로 시작되는 수업은 어색한 발연기와 대본이 넘치는 사실상 연극이었다. 왜냐? 장학사가 떠난 이후 다시 원위치 됐으니까.

이렇듯 장학사는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고, 선생님들보다 아득하게 높은 사람인 것 같고, 희소성이 있는 신기한 존재…. 그 때의 학생들이 지금은 학부모가 되었는데, 자녀인 요즘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장학사 온다고 그렇게 부산 떨지 않는다고 한다. 평상시처럼 청소를 할 뿐이다. 다만 수업시간에 정장 입은 사람들이 교실 뒤편에 쫙 서 있는다고 한다. 하긴 시대가 많이 변하기도 했다. 88올림픽이 벌써 32년 전 얘기고,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장학사들은 어험~ 하지 않는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학생에게 치이고, 업무에 치여 바쁜데 왜 하필 우리 학교에요?’ 마음의 하소연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소중한 존재일수록 우리는 잘 모르기 마련이다. 상체와 하체를 연결해주는 허리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학교현장과 정부기관(교육부, 교육청)을 연결해주는 장학사의 노고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장학사가 최대한 학교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사람은 예전 기억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기 때문인가 보다.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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