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등 외적 좋음 충분조건 안돼
성과지식·본질지식·구원지식 등
동반자로 삼아 가치 있는 삶 지향

▲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작년 추석, 나훈아는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비대면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열었다. 사람들은 그가 부른 트로트곡들 중에서 특히 ‘테스형!’에 환호했다.

‘테스형!’은 소크라테스에게 ‘형’이라는 친근한 호칭을 붙여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고 묻는 ‘테스형!’은 우리의 삶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테스형!’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노래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본래 델피 아폴론 신전 앞에 새겨진 글귀이다. 불사의 존재인 신(神)과 달리 사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한계를 깨닫고 분수를 알아야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인간의 ‘자기 인식’의 중요성으로 해석한다. ‘좋은 삶’을 위해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어떤 것을 알기 위해선 우선 그것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알려고 하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방이 가진 편견을 깨뜨리려고 상대방에게 묻고 또 물었다. ‘무지(無知)의 지(知)’야말로 진정한 앎으로 가는 중요한 출발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삶과 세상을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정글과도 같아 승리가 곧 정의이고, 좋은 삶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좋은 삶은 성공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사는 것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과도한’ 생존 경쟁으로 너무나 지쳐 있지 않은가!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에만 사로잡히다 보니 가치 허무주의에 놓여 있지 않은가!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인 막스 셸러는 <지식의 형태와 교양>(1924)에서 지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성과지식’은 생존과 다양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를 법칙적으로 지배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이른바 ‘노동지식’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지식은 물질적 풍요와 안락에 기여한다. 예컨대 자연과학, 공학, 경영학 등 실증과학이 이에 속한다.

둘째, ‘본질지식’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대상의 본질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으로서 철학, 문학, 역사학 등이 대표적이다. 교양지식으로도 불리는 이 지식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숙고하게 하고 인간을 품격 있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예컨대 공자의 <논어>나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을 때 일어날 자신의 변화를 상상해보라.

셋째, ‘구원지식’은 인간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으로부터 요구된다. ‘테스형!’의 ‘천국’이란 가사가 넌지시 암시하듯이, 인간은 어떤 초월과 구원의 물음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불교 등 종교적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형이상학적 지식이 여기에 속한다.

근대 이후 실증적 ‘성과지식’이 혼자 ‘독재’함으로써 다른 지식들은 점차 삶에서 밀려났다.

인간의 생존과 욕망에 봉사하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인격을 고양시키고 인간을 신성(神性)에 가깝도록 승화시키는 교양지식과 구원지식도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삶을 위해 지식의 불균형 상태를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지만 코로나19는 소멸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상공인 등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할 것이고 이겨내리라 믿는다. 지금이 참으로 어려운 시기라 할지라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좋은 공동체, 좋은 의식주, 건강, 자식, 친구, 명예 등과 같은 외적인 좋음은 좋은 삶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 말이다.

좋은 삶은 세 종류의 지식을 동반자로 삼아 자신의 인격과 구원을 돌보는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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