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는 美 정부의 오랜 딜레마
北 발표대로 핵잠함 등 개발 시작땐
美 마지막 협상 기회 앞에 서있는 셈

▲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

북핵문제는 남·북·미 삼자 모두에게 풀지 않으면 안 될 당위의 문제이다. 우리에겐 안보적 위기와 불안의 문제이며, 북에겐 경제적 활로에 치명적 걸림돌의 문제이다. 미국으로서도 조만간 패권에 도전할 중국과의 경쟁을 복잡하고 불리하게 만들 심대한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열고 있다. 현재까지 그들이 발표한 내용은 한마디로 한미 양국의 움직임을 본 다음 그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입장이다. 당연한 포지셔닝이다. 기대했던 트럼프와는 지옥과 천당 사이를 계속 오가는 롤러코스터만 탔을 뿐 제재 해제나 체제보장 등 자신들의 사활적 관심사는 한 걸음도 얻어낸 것이 없었다. 거기에 바이든 정부는 아직 출범도 못한 마당인데 섣불리 양보의 신호나 내용 있는 제안을 내놓을 계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무기나 핵 잠수함개발 계획 같은 발언들은 리더십의 누수를 우려한 대내용 자랑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한미 양국을 향한 모종의 임박한 조치나 공격적 언사는 되도록 자제하려 한 행간의 태도에서 그들이 미국과의 갈등이나 경제 제재의 세월을 얼마나 끝내고 싶어 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으로서는 사실 북핵문제가 해결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 냉전의 해체와 구소련 붕괴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군비수요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주는 기제는 북한이나 이란 같은 소위 불량국가들의 존재에 힘입어 왔다. 주지하듯이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의 병기창’을 자임하며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만들어 엄청난 양의 무기들을 생산, 영국·소련·중국 등 연합 각국에 원조하였다. 문제는 대전이 끝난 후에도 냉전질서의 출현 탓에 그 무기생산 체계와 방위산업들이 민수용으로 전환되기는커녕 군부 및 정치권과 유착하여 더 고도화되고 확대되는 군산복합체로 고착해 버린 점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연설을 통해 그러한 군산복합체의 출현과 위험을 엄중히 경고하였음에도 미국은 변화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등장한 1998년쯤으로 기억된다.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가진 정세관을 알아보고자 서울을 거쳐 부산을 내방한 뉴욕타임스의 한 논설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진보적인 민주당이라 해도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에 관한한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방위산업체에 고용된 막대한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투표가 모두 소속 기업체의 이익과 운명에 정확히 연계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히 미국의 주류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은 거의 누구도 군수산업체의 관리 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미국 정가의 흐름에서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만이 어쩌면 유일한 예외적 존재였다. 백악관 참모들도, 국무부도 펜타곤도 원치 않는 난제를 트럼프 자신만이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용감하게(?) 밀어붙이며 고군분투한 결과가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김정은이 이번 8차 당대회의 보고에서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토로한 것도 바로 그런 구조적 조건을 지적한 것이었다.

냉전시기 미·소 모두 그렇게 많은 핵폭탄이 있었지만 누구도 쓰지 못하였다. 북한은 핵단추에 먼저 손을 대는 순간 세계의 공적이 되고 만다.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그 때문에 핵무력의 선제 사용은 없을 것임을 스스로 계속 천명하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완전한 핵폐기’(CVID)를 목표로 하더라도, 목표도달을 위한 경유 지점을 합의하고 그 때마다 서로의 이행내용을 확인하는 절차가 정말로 불가능할까? 만약 북한이 기대와 다른 길로 접어든다면 언제든 군사적 응징의 수단과 방법을 넘치게 갖추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이미 2017~2018년에 무려 10여 개의 대북 군사작전을 심각히 검토한 적도 있다지 않던가.

당장 확인은 어렵겠으나 북측 발표대로 핵잠함 등의 개발이 정말 시작된다면, 미국은 그나마 남아있는 마지막 협상의 기회 앞에 서있는지 모른다. 최소한 서로의 진의 파악을 위해 조만간 협상테이블에 진지하게 마주 앉기를 서로 바랄 수도 있다.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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