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토기형태 중 ‘검단리식 토기’

한반도 최초 ‘마을 전체’ 발굴 유적
청동기 대표하는 환호시설 등 주목
대륙-섬 문명 이전역할 담당 분석
日야요이문명 유입설 일축 가능성

울주군, 발굴 30년만에 정비계획 추진
작년 6월부터 시작…3월께 마무리
학술가치 파악후 관리·활용안 수립
진입로·안내소 등 시설 조성도 검토

울산은 청동기시대 유적의 보고다. 발굴조사 된 청동기유적이 무려 195곳에 달한다. 5개 구군에서는 울주에 가장 많은 분포한다. 절반 이상인 96곳에 달할 정도다. 그 중 가장 특별한 곳으로 ‘울주 검단리 유적’이 꼽힌다. 동시대 울산 유적 중 유일하게 국가사적(제332호)이기도 하지만 한일고고학계 및 동아시아 역사조명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30년 넘도록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이 유적이 울주군의 종합정비계획으로 조만간 새로운 면모를 갖출 전망이다. 울산지역 역사문화학계는 물론 지역사 전문가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검단리 유적은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산62번지 일원에 있다. 울산CC 확장사업 도중에 발견 돼 1990년 부산대박물관이 발굴조사했다. 유적지 안에는 청동기시대의 마을과 고인돌이 발견됐다. 토기는 556점, 석기는 230점이 출토됐다.

▲ 울주검단리유적 발굴조사 당시 사진. 부산대박물관(1990)

이 유적이 한중일 고고학계의 주목을 끈 데는 청동기를 대표하는 ‘환호’(마을주변을 둘러싼 도랑) 시설과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발굴된 한반도 최초의 유적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유적이 나오면서 일본 야요이문명의 한반도 유입설이 일축될 수 있었으며 거꾸로 한반도가 대륙과 섬나라의 문명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이 곳에서 발굴된 집자리와 토기는 ‘검단리식 집자리’ ‘검단리식 토기’로 명명되며 한반도 청동기시대 대표적 유적으로 인정받는다. 검단리식 집자리는 환호 안팎에서 모두 92기가 나왔다. 대규모 마을이 형성됐다는 중요한 증거다. 검단리식 토기는 깊은 바리 모양의 무문토기에 낟알문(아주 짧은 빗금무늬)이 새겨졌다.

다만 이같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울주 검단리 유적은 제대로 알려 지지도, 조명받을 기회조차 없이 30년 이상을 흘러왔다. 지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 종종 방문하기는 하나, 유적까지 진입하는데 불편함이 큰 데다 이 곳이 유적임을 알리는 표지만도 유일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겨우 현장에 도착하더라도 비스듬한 비탈에 풀섶이 무성한 공간일 뿐 역사적 의의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연구 및 활용방법은 전무했다.

울주군이 지난해 6월 시작한 ‘울주 검단리 유적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은 착수보고 및 중간보고회 등을 거치며 현재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 애초 보고회에 따르면 유적의 학술적 가치를 파악한 뒤 관리 및 활용안을 수립하는 내용이이었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유적이 매장 된 사유지를 매입한 뒤 진입로와 탐방로, 안내소 등의 시설물까지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울주군 관계자는 “유물 보전과 활용에서 최선안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과정이라 아직은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신종코로나 등 영향으로 일정이 다소 지연되긴 했지만 준공 기한인 3월 안에 성과를 보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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