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토함산을 오른다. 맵고 싸늘한 바람이 뒷덜미를 파고든다. 이마가 썬득 시린데 하늘은 말갛게 푸르다. 바싹 마른 낙엽이 뒹구는 길을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니 송창식의 노래 ‘토함산’이 저만치 앞서 간다.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발바닥에 힘을 주어 1000년의 무게를 느끼다 보니 어느새 석굴암이다.

석굴암 본존불이 있는 곳은 해돋이 명소다. 동해 문무대왕릉에서 떠오르는 해가 가장 먼저 본존불에 와 닿기 때문이다. 새해 첫 날이면 저 아래 불국사에서부터 구름 인파가 밀려들었다. 신축년 해돋이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고 길도 폐쇄되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바다에서 쑥 떠올라 석굴암을 감싸 안은 해를 맞이한다.

석굴암 삼층석탑을 알리는 표식은 아무데도 없다. 보물 제911호는 꽁꽁 숨어있다. 스님의 수행공간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종무소에서 허락을 받아야만 볼 수 있다. 스님들과 함께 참선을 해 온 탑이기에 그 앞에서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작은 마당은 쌓인 눈을 쓸어낸 비질 자국이 또렷하다. 숨소리도 죽인 채 저절로 발끝으로 걷게 된다.

 

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형석탑이다. 탑의 바닥돌인 지대석이 큼직한 원형이다. 기단을 덮은 갑석도 둥글다. 팔각의 이중 기단 위에 삼층의 석탑을 올린 특이한 모습으로 높이는 3m가 조금 넘는다. 원형과 팔각, 사각이 조화를 이루어 단정함이 돋보인다. 부드러움을 한껏 뿜어내는 둥근 부재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었던 몸이 스르르 풀린다.

탑을 둘러싼 숲은 모든 것을 털어 내고 결연하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아침 해를 받아 삼층석탑에다 죽죽 선을 그어대다 동글동글 햇살을 매달기도 한다. 새해맞이 꽃 공양이다. 탑 앞에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종일이라도 앉아 겨울 숲이 그려 낸 그림을 감상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계단을 내려오다 돌아보니 상륜부의 노반과 복발이 삐주룩이 보인다. 삼층석탑은 스님과 함께 곧 동안거에 들어 갈 모양이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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