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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경상시론
[경상시론]‘희생양 만들기’ 사회를 넘어거짓·선동에 쉽게 전염되는 군중들
정치적 논의할땐 투명·공정성 보장
공의의 방향서 미래 비전 설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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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17  20: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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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문학박사

새해 벽두부터 집권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관련 발언이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개인적으로 주목한 것은 여권 강성 비판자들의 반응이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이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당대표를 마치 조리돌리듯 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섬뜩한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독배나 예수의 십자가에서 보았던 ‘내부 희생양’ 정치의 기시감 때문이었지 싶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70세에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국가가 신봉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고발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지만 아주 그럴싸해서 소크라테스조차도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진짜 이유는 사람들의 ‘증오’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보다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델포이 신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그 스스로 유명 정치인, 시인, 기술자를 찾았다.

그런데 소문과는 달리 선(善)이나 미(美)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자(智者)의 태도라고 말해주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그들이 소크라테스를 싫어하고 적의를 품고 중상모략하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두렵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등에처럼 아테네에 달라붙어” 사람들을 깨우치고 설득하고 비판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사후 약 400년 뒤 팔레스타인에서 더 극적인 예수 처형 사건이 발생했다. 로마 지배 하의 유대인 사회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충격이었다. 전통적인 유대인의 신관이나 사회규범과는 다른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며, 하나님-예수-인간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설정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했다. 예수의 하나님은 유대인의 야훼와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야훼였다. 유대인의 야훼는 민족의 신으로 배타적 징벌적 정복적 성격이 짙었다. 구약의 율법이 지극히 ‘세상적인’ 이유다. 예수는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율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세상적인 율법을 절대시한 랍비는 물론이고 예수의 제자조차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진실과 정의를 두려워한 로마 당국과 유대인 기득권 세력, 그리고 거짓과 선동에 쉽게 ‘전염된(contagioned)’ 된 군중이 서로 하나가 되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예수를 피의 제물로 삼았다.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죽음에서 각별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한 때는 추종자였던 군중’이 희생양 만들기에 동참한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가. 다수의 진보적 언론, 논객, 지식인이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향해 돌을 던지고, 전직 대통령 사면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부자들이 당대표에게 침을 뱉는다. 이런 행위가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처형을 외치던 그 군중과 뭐가 다를까?

희생양 만들기는 일종의 ‘사회적 역질(plague epidemic)’이라 할 수 있다. 안팎을 가리지 않으며 전염성이 강하고 기본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사회의 희생양 만들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 한국전쟁과 냉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적대와 차별과 배제, 거짓과 왜곡, 제도화된 폭력이 일상이었다. 정의 없는 의리가 사회규범이 되고 돈과 권력을 좇아 하이에나처럼 사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 믿도록 길들여졌다. 그런 점에서 희생양 만들기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적폐’의 근육인 셈이다. 남녀노소, 보수와 진보, 여와 야 모두가 희생양 만들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개혁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조차 이 점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이제 이러한 질곡의 역사를 넘어서야 할 때다. 개혁과 참여와 절차에서 기회균등, 투명성, 공정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어떤 정치적 논의든 책략에 앞서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힘들어”라고 외치는 현실을 치유하고 미래 비전을 설계하는 공의(公義)의 방향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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