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책과 현장의 괴리 속 깊어가는 아동의 멍자국

▲ 울산시가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지난해 8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방문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아동학대 및 성폭력 예방 인형극’ 공연을 벌였다. 경상일보 자료사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보육교직원 개인의 인성 문제가 거론된다.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어땠는지 등이 입에 오르내리면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이유를 교사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순 없다. 수많은 아동학대 근절 대책 및 보육현장 환경 개선, 아동학대 발생시 대응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력 부족과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아동학대 조사 및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점 역시 아동학대 재발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에 따라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해 아동학대 조사 및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이 과정에서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아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취득 쉬운 자격증, 인성·자질 검증 역부족
임금·근무여건 등 열악한 보육환경도 한몫
작년 아동학대처벌 관련 특례법 국회 통과
준비기간·인력·예산·전문성 부족 등 한계
아동학대-훈육 등 판단기준 확립도 급선무
사회전반 안일한 인식 개선·교육확대 지적

◇안팎으로 열악한 보육 환경

울산에서 보육교직원이나 교원에 의한 아동학대는 2016년 12명, 2017년 17명, 2018년 13명, 2019년 9명, 2020년 14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아동학대가 보육교직원 개인과 보육환경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방법이 쉽다는 점이 보육교사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가장 많다. 보육교사 자격증은 급수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가장 선호도가 높은 2급의 경우 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 등으로 어렵지 않게 취득이 가능하다.

실제로 인터넷에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이라고 검색만 해봐도 보육교사 자격증을 쉽게 취득하는 방법은 물론, 학점 이수를 위한 과제 자료도 대신 찾아준다는 내용의 글이 쏟아진다. 현행 자격증 취득 과정으론 보육교사로서 인성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걸러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보육현장의 상황도 아동학대 발생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민간·가정 어린이집 보육교사 1만2223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보육교사 10명 중 9명이 최저임금 수준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1만927명(89.4%)중 6년 이상 경력자가 절반이 넘는 51.6%에 달한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직무스트레스가 아동학대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희영 광주여대 유아교육과 교수가 지난 2016년 8월 발표한 ‘유아교사의 자아존중감 및 직무스트레스가 아동학대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직무 스트레스와 아동학대 인식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는 곧 신체적 학대 및 정서적 학대, 방임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울산시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어린이집 원장들도 보육교사의 인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뽑고 있지만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완벽하게 거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최근 인성검사를 별도로 시행하는 방법 등을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준비 미흡한 제도 실행에 사건재발 방지 역부족

아동학대 사건 발생 이후 아동학대 조사 및 사후 관리를 통한 아동학대 사건 재발 방지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난해 3월 국가가 직접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다는 취지로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년간 민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수행하던 아동학대 현장조사, 응급조치 등 업무가 지방자치단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에게로 지난해 10월부터 이관됐다.

하지만 아동학대 관련 업무를 맡게 된 지자체들은 업무 이관 준비기간이 짧았던데다 현장 인력 부족, 과한 업무 등으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제 시행에 따라 정부는 지난 2018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를 기준으로 50건 당 전담공무원 1명을 배치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울산시 1명, 중구 2명, 남구 5명, 동구 2명, 북구 3명, 울주군 3명의 전담공무원을 배치했다. 중구와 동구는 정부 권고 기준보다 인원이 1명씩 부족하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예산 부족으로 전담공무원을 못 뽑은 지자체도 있고, 설령 뽑았다 하더라도 전담공무원 준비는 누가 어떻게 시키겠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지난해 동구의 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발생 당시 동구의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1명 뿐이었고, 사건 발생 이후 첫 전담공무원은 업무 과중으로 결국 휴직계를 내면서 다른 직원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중구에서는 상세 업무지침이 없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충분한 준비기간과 인력 및 예산, 전문성을 확보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제도부터 시행되면서 아동학대 사건 이후 보호받아야 할 아동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안일한 인식과 교육 부재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재발하는 건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 전반의 안일한 인식과 교육 부재 탓도 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지난 2019년 발생한 남구 국공립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재조사를 통해 추가 아동학대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수사 당시 교사가 억지로 물을 먹이는 상황은 학대 혐의로 포함하지 않았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부실 수사라는 여론이 들끓자 지난해 12월 법원 선고를 앞두고 결국 재수사에 들어갔다.

아동학대 판단 기준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훈육인지 학대인지를 판단하는게 상당히 어렵다. 아이를 때리거나 하는 명백한 학대 행위 외의 행동은 훈육의 차원인지 학대로 봐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 의견을 듣는 등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아동학대 사건 발생 당시 몇 몇 지자체 공무원들은 “폐쇄회로(CC)TV를 학부모들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이 팽배해질수록 학부모들은 현장에서 아동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제 때에 필요한 조치를 하기도 어렵게 된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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