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대숲 조성으로 강 조망 어려워져
대숲·꽃밭으론 국가정원 위상 못살려
국립산업박물관이 스토리텔링 마침표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태화강 경관의 백미는 십리대숲이다. 활처럼 둥글게 띠를 이루고 있는 십리대숲에선 언제나 건강한 푸른 바람이 불 것만 같다. 십리대숲이 없는 태화강은 평범한 하천에 불과할 것이다. 십리대숲은 태화강이 국가정원이 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태화강이 공해도시 울산을 탈피하고 생태도시 울산으로 거듭난 상징이라면 대숲은 상징 중의 상징임이 분명하다. 100리 중의 10리, 알다시피 십리대숲은 인공적 조성임에도 세월의 깊이가 더해져 마치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적절하게 자리하고 있다.

울산시는 백리대숲을 조성 중이다. 십리보다 백리? 관광객 유인에는 효과적일 수도 있겠으나 태화강백리를 대숲으로 뒤덮어 식생의 다양성을 포기할 필요까지 있을까? 처음부터 의아했으나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선(線)이 아니라 점(點)으로 연결한다니 지켜보자 싶었다. 실질적 백리가 아니라 ‘은유적’ 백리대숲이라면 태화강의 상징성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믿음을 벗어나고 있다. 조금씩 대숲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도로가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대나무 행렬은 숲이라기도, 가로수라기도 어색하다.

단지 어색함뿐이라면 세월의 힘에 기대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색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감탄해왔던 아름다운 풍경이 하나둘 대숲에 가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언양 구수리를 지나는 24호 국도 옆 암벽이다. 누구는 중국의 적벽(赤壁)에 비견하기도 하는, 마치 동양화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운 그 암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최근 심은 대숲이 짙어지면서 점점 사라질 것이다. 구영리 앞 강변산책길도 대숲으로 감싼 곳이 많아졌다. 태화강을 바라보며 걷는 툭 트인 시원함이 자랑이던 이 산책길도 대숲에 가려 어두컴컴해지고 있다. 중구 혁신도시 옆 태화연오토캠핑장도 대나무 가로수로 일부 가려졌다. 캠핑을 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 시내 한가운데 있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내던 곳이다. 대숲 조성의 목적이 가림막은 아닐 텐데, 곳곳에서 때 아닌 아름다운 풍경의 가림막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은 차경(借景)이다. 차경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위의 풍경을 그대로 경관을 구성하는 재료로 활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멀리 풍경을 빌려오기는커녕 대숲으로 풍경을 가로막는다면 태화강국가정원은 우리 고유의 정원이라 하기 어렵다. 물론 울산에 심고 있는 대나무가 전부 태화강 백리대숲 사업의 일환은 아닐 것이다. 태화강변이 아닌 곳에도 적잖이 대숲이 조성되고 있다. 울산시목(市木)이 대나무인 만큼 다양한 장소에서 볼 수 있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적절한 장소에 숲을 조성하되 전망에 방해가 되는 곳이라면 오히려 걷어내기도 해야 한다. 백리대숲이란 이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태화강 조망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태화강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도심하천이다. 세계적 유행이라는 ‘자연주의 정원’조차 필요 없을 만큼 이미 ‘자연정원’이다. 공연히 국가정원이라는 이름에 짓눌려 백리대숲이니, 대숲 스카이워크니, 가든브리지니 하는 치장을 할 이유는 없다. 지금 태화강에 필요한 것은 외적 치장이 아니라 울산시민들이 만들어낸 기적을 담아내는 스토리텔링의 완성이다. 우리나라 근대화를 일구어낸 기적, 죽음의 강에서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난 기적을 읽을 수 없다면 어느 도시에나 있는 평범한 하천과 다를 바 없다.

사시사철 색다른 꽃밭이나 무작정 늘린 대숲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강변에 꽃 심고 나무 심는 것은 어느 도시에서나 하고 있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숲도 담양을 앞지르기 쉽지 않다. 태화강의 기적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의 건립만이 태화강이라는 공간스토리텔링의 마침표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곧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태화강국가정원의 위상인 것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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