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수 울산시 남구 복지환경국장

올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 21주년을 맞는 해다. 국민 생활보장이 국가의 시혜가 아닌 국민 권리라는 개념으로 출발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지난 20년간 여러 차례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최후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톡톡히 수행해 왔다.

하지만 급여기준을 두고는 논란이 많았다. 수급자 결정의 가장 큰 잣대가 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문제였다. 수급권자와 1촌 관계인 직계혈족(부모, 아들, 딸)과 그 배우자(며느리, 사위)의 부양능력에 따라 수급여부 및 급여액수가 정해진다는 얘기다. 즉, 기초수급 신청가구의 소득과 재산이 수급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자녀 중 한 가구라도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 가구는 기초수급 자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수급 적합으로 판별되더라도 부양의무자가 조금이라도 부양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면 부양의무자 가구가 수급자에게 일정 비율의 부양비를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봐서 지원 금액이 그만큼 적어진다. 게다가 수급자가 지원을 받는 동안에는 부양의무자는 계속 관리대상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 변동에 따라 수급자에 대한 지원이 달라지고, 나아가서는 수급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많다.

기초생활보장 실태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급권자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생계·의료 급여를 못받는 사람은 2018년 73만명에 달했다. 탈락 이유로는 ‘부양의무자 기준 초과’가 45.3%로 가장 많았고, ‘본인의 소득기준 초과’(17.1%) ‘재산 기준초과’(13.2%) 순이었다.

이처럼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간 복지 사각지대를 만드는 주요 걸림돌로 여겨졌다. 생계급여를 신청하려 해도 ‘부양능력 있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신청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교육·주거 급여에서는 이미 폐지된 부양의무자 기준이 생계·의료 급여에서는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2015년에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되면서 부양의무자 소득·재산 기준이 완화됐다지만 아직 그 굴레로 인해 복지혜택 제외 대상자가 많다. 사각지대에 놓인 수급자가 부양의무자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게 돼 가족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생계급여 수급자 선정 때 적용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단계적으로 폐지된다는 얘기는 희소식이다. 정부는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을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 전면 폐지하기로 확정했다. 먼저 올해는 노인·한부모 가구를 대상으로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내년에는 그 외 가구로까지 대상을 넓혀 부양의무자 기준을 아예 없앤다.

이에 따라 생계급여 신청자의 소득·재산이 기준에 해당된다면 부양의무자와 상관없이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 다만 연소득 1억원 또는 부동산 재산 9억원이 넘는 부양의무자가 있을 때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통해 18만여 가구, 26만여 명이 신규 급여수급 기준에 들 것으로 추산한다. 남구는 이달 중으로 생계급여를 못받는 노인·한부모 1200여 가구에 안내문을 발송하고, 취약계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작년 12월 말 남구 기초생활수급자는 6904가구 9191명이었다.

현행 기준으로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일정한 부양비를 수급권자 소득인정액에 포함해서 그만큼 급여를 차감하는데 이것이 폐지되면 이미 생계급여 수급 중인 노인·한부모 4만8000여 가구(6만7000여명)의 급여액도 더 오를 전망이다. 남구에서는 1100가구(1500명)의 급여가 인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후 의료급여에서도 부양의무자와 수급권자 소득·재산 반영 기준이 바뀌면 19만9000명이 추가로 급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폐지는 아직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상자뿐 아니라 사회복지 일선 담당자들에게도 숙원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20년동안 최후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해 왔듯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기초생활보장제도 출발 당시 그렸던 권리로서의 국민 기본생활 보장이라는 청사진을 현실화 해 국민 복지향상의 선구자 역할을 계속 수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서경수 울산시 남구 복지환경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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