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리 특별전이다. 황룡사 구층 목탑에 삼천 여개의 유리구슬이 안치되기도 했다. 고대 유리는 부처님께 바치는 귀한 보석이었다. 승안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녹유리사리병도 전시되어 있었다. 순간, 잊고 있었던 삼층석탑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망설임 없이 함양 우명리 골짜기로 향했다.

승안사지 초입에는 일두 정여창의 묘를 알리는 팻말이 뚜렷한데 어디에도 삼층석탑에 대한 안내는 없다. 정여창은 조선전기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이며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함양이 배출한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삼층석탑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 골짜기 좁은 길을 조심조심 오르다 보니 앞이 훤히 열리고 폐사지의 탑이 훌쩍 다가온다. 누군가 아침부터 다녀갔는지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이 선명하다.

승안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제294호로 고려초기의 석탑이다. 좀 둔탁한 느낌이 들지만 장식적 수법이 강하다. 호국불교를 지향하는 고려는 부처를 향한 지극함을 탑에도 그대로 나타내었다. 초층 기단에는 안상문을, 상층기단은 탱주로 한 면을 둘로 나누고 그 안에 불상과 보살 그리고 비천상을 배치하였다. 차와 꽃을 공양하는 보살상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은 모두 무릎을 꿇은 자세다. 부처도 대좌에 앉지 못하고 무릎을 구부리고 계신다. 석공은 익히 보아온 것을 버리고 자신만의 지극한 발심으로 새김질하였으리라. 기단 갑석에는 두툼하고 큼직한 연꽃을 피웠다. 그 연화좌 위에 삼층의 탑신을 받들어 올렸다. 일층 몸돌에도 사천왕상이 부조되어 있다. 악귀를 밟고 서 있는 위협적인 사천왕이 아니라 볼에 웃음을 머금은 부드러운 인상이다.

▲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한동안 잊고 지낸 것이 미안하여 만개한 연꽃 장식을 쓸어본다. 석탑의 지붕에서 눈 녹아 흘러내린 물방울이 화답하듯 내 손등에 툭 떨어진다. 오색영롱 특별전을 다시 보러 가야겠다. 삼층석탑의 사리공이 품고 있었던 녹유리사리병을 편안하게 오래도록 볼 수 있을 테니까.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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