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부모 같은 학대자들
강자엔 비굴·약자엔 하이에나
견제·예방 사회적 시스템 필요

▲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때 그렇게 나를 학대했던 엄마의 모습은 평생 잊히지 않았어요.” 대인공포증이 있는 30살 여성 환자의 말이다.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든 자신을 잘 알게 되면 실망하여 떠나 버릴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학대를 받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처럼 자신을 하찮게 여기며 살아간다. 어린 마음에 자신이 잘못하였기에 혼나는 것이라 여겼었고 엄마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병신’ 취급을 받으니 세상을 살아나갈 힘이 부족하다.

정인이는 겨우 16개월을 살고 이 모진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부모의 폭력을 피할 수 없기에 견뎌내는 ‘정인이’가 있고, 어릴 적 그 끔찍한 기억으로 마음의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정인이’가 있다. 학대하는 부모, 어린이집과 장애시설의 교사와 관리자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신문의 사회면에 크게 실리며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지만, 곧 잊혔다.

이들은 왜 잔인한 학대를 하는 것일까? 학대를 받는 이의 공통점은 아이나 장애인이나 약하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행동 하나에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그들은 피드백을 얻는다. 생사여탈권을 쥔 느낌일 것이다. 화풀이 일 것이고 익숙해지며 더 잔인해진다. 저 아이가 맞을 짓을 하니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의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한다. 어쩌면 성장 과정 중에 학대를 받았을 수 있다.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에 사랑을 주지 못하고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양육의 장애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잔인한 학대자는 아니고 내 아이에게 ‘버럭’하는 정도의 엄마들은 자주 볼 수 있다. 대개 우울증으로 감정 기복이 커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정도이다. ‘제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게 너무 후회되고 이런 내가 싫으니 치료를 받아 고치고 싶어요’라며 오는 분들이다. 그러기에 잔인한 학대자인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의 부류와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죄책감이다. 아이를 해치게 되거나 사망하게 하였다면 이들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기 전에 이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변명하지 않고 평생 자신을 미워할 것이다. 아이를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항변하고 법의학적 상식으로 나온 결과를 부인한다면 그는 잔인한 범죄자이다. 지인들은 정인이 부모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 큰 이들은 다음과 같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보다 사교적이고 넉살이 좋은 편이다. 내 앞에서 나를 띄우며 가장 친한 사이인 양 굴지만 다른 이 앞에서 나를 험담한다. 강하고 이득을 주는 이에게 순한 양이고 약자에게는 하이에나이다. 거짓말에 능하고 염치와 죄책감이 없다. 조삼모사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다. 감정조절에 능하고 계산적이다. 미워하는 이에게 간계를 부려 다수를 선동하여 꼭 응징하는 모습이 치밀하고 잔인하다.

난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착하며 자신을 낮추는 이를 경계하는 편이다. 그이가 자기보다 약한 이에게 어떻게 할지 의심되고 저 웃음 이면에 자리한 반대 마음에 불안하다. 이들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아 내원한 분들을 오랫동안 치료했다. 이러한 소시오패스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약 25~50명 중의 한 명꼴로 있을 것이기에 잘 살펴봐야 한다.

정인이 사건은 또 잊힐 것이다. 학대자는 여전히 우리 옆에서 부모의 이름으로, 배우자라는 얼굴로, 상사의 권위로, 관리자의 위세로서 그 말짓과 손짓 하나로 약자를 폭행하고 마음을 후벼 파며 하루하루가 지옥이 되게 만들 것이다. 사회가 이들을 견제하고 막아내는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

입양 이후에도 아이의 심신 건강상태를 평가해야겠다. 학대가 의심되는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 이외에 여러 기관에서 공유하며 이중삼중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학대하는 죄는 가중하여 처벌하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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