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예전에 모방송국에서 주관하는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나갈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관련 교수들의 추천을 통하여 뽑혀온 학생들은 대체로 학생들 사이에서 말을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두 편으로 나누어 모의 토론을 하게 하고 학생이 심사위원이 되어 채점하게 했다. 토론은 매우 치열하게 이루어졌고 박빙으로 승패는 갈려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와 학생들 간의 채점 결과였다. 나는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았고 나는 토론 잘하는 사람을 뽑았다고 했다. 말을 잘하는 것과 토론 잘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것이고 토론을 잘하는 것은 잘 듣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 토론 사회를 봤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말만 하려는 사람들을 본다. 토론 중에 감정이 격해져서 거의 싸우는 사람들을 본다. 토론이 끝나서도 서로 앙금이 남아서 소원해진 사람들도 본다. 대체로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못해서이거나 내 생각에 대한 비판을 나에 대한 적대적 행위로 여겨서이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토론하는가? 왜 논쟁을 벌이는가? 인정받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이기고 싶어서인가?

한비자는 ‘논쟁의 목적은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 있다’고 했다. 얼마나 명쾌한 말인가? 흔히들 설명의 목적을 이해에 있고 논설의 목적을 설득에 있다고 한다. 이해는 공감으로 충분하지만, 설득은 듣는 이가 나의 입장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이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논쟁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말하기보다 듣기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의 지혜도 만 명의 지혜보다 나을 수 없다’는 한비자의 말처럼 듣는 것의 유익함은 많다. 다음은 말이 순해야 한다. 말이 순하다고 분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순함 속에 강함이 있어야 진정한 강함이다. 사람의 크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크기에 있다. 큰 장사꾼도 큰 정치가도 모두 그 크기만큼 사람의 마음을 얻음에 따름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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