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역사적으로 볼 때 세금이란 왕이나 강력한 권력자가 강제로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세금을 내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어서, 왕이나 강력한 권력자는 세금을 내는 사람을 지역의 힘 있는 폭력배나 도적떼와 같은 비체계적인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비체계적인 예측 불가능한 폭력보다는 세금이라는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폭력이 자신에게 더 유리함을 점점 이해하게 됐다.

세금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면 왕과 납세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왕이 너무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는 자주 발생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농민운동이나 혁명의 원인이 높은 세금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에는 추가적인 과세는 귀족들의 자문을 거치지 않으면 부과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고, 이는 1628년의 권리청원과 1689년의 권리장전에서 의회의 동의 없는 과세를 하지 말라는 조항이 된다. 그리고 현대 인권의 기초를 제공하는 1948년의 유엔 세계인권선언 제17조에서는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인권으로 인정하고, 비체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비체계적 폭력으로부터 보호 명목
왕이나 권력자들이 세금 걷기 시작
체계적 폭력인 세금이 수탈에 이르자
시민혁명 등 조세저항 일어나기도

세금회피 막으려 토지 주과세 대상
왕의 토지니까 세금 내야한다 논리
英 철학자 존 로크 체계적으로 반박

우리나라 부동산 세금 논리적 근거
경제학자 헨리 조지 영향 받았으나
소득세에 토지세 더하는 징수는
시대적 상황 이해하지 못한 판단

현대국가 세금 의미 많이 달라졌지만
세금부과는 여전히 세심한 주의 필요

높은 세금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납세자들이 요구한 것은 세금의 폐지가 아닌,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세금을 부과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동학농민운동에서도 이름 없는 잡세를 폐지할 것을 요구한다. 납세자들이 저항한 것은 세금 자체가 아닌 비체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세금이었던 것이다.

납세자들이 세금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세금을 내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득을 숨겨 세금을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납세자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왕은 숨기기 어려운 부분에 세금을 부과했고, 생산의 원천이었고, 숨기는 것이 불가능한 토지는 주된 과세의 대상이었다.

거래되는 상품으로의 토지는 이동이 불가능하고,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중 처음부터 존재했다는 특징은, 즉 누군가가 노동으로 만들어 낸 상품이 아니라는 점은 토지에 대한 과세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왕의 경우에는 왕이 나라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논리로 토지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세금을 거둔다. 왕의 토지를 빌려 쓰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폭력을 동반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왕이 부과하는 세금에 논리를 들어 거부하기 보다는, 세금을 내는 것을 선택한다. 다만 유럽의 교회는 토지는 신이 창조한 것이며, 신의 대리자인 교회는 왕에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루어 낸다. 마지막으로 토지는 신이 창조했기에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농민운동과 사상가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왕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체계적인 반박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생산자가 만든 상품은 생산자의 노동력과 자연의 결합물이기 때문에 그 소유권이 생산자에게 있다는 논리다. 존 로크의 논리에 근거를 둔 영국 의회는 왕이 부과하는 비체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세금에 제한을 가하게 된다. 존 로크의 사상은 미국과 프랑스로도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1773년 의회대표가 없는 식민지에 과세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보스턴 차 사건이 미국독립전쟁으로 연결된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 인권선언에서는 제2항에서 자유와 소유권을 프랑스 혁명의 정신으로 천명한다. 세계사의 큰 걸음들은 재산에 대한 소유권과 세금에 대한 저항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하지 않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토지를 개량해서 얻은 가치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타협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세금과 관련된 논의에서는 미국의 헨리 조지가 소환된다. 헨리 조지는 토지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개인은 자신의 노동 생산물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있는 반면, 사람이 창조하지 아니한 토지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사상은 사실 존 로크의 논리와 과거부터 존재하던 토지세에 대한 반박 논리에 연원을 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다른 부분이다. 헨리 조지는 인구의 증가에 따른 토지가치의 상승은 토지소유자의 노력의 결과가 아님에도 토지소유자가 그것을 향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토지에 세금을 부과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의 부동산 세금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헨리 조지에 기반해 부동산 세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거나, 알리지 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헨리 조지가 주장을 펼쳤던 1870년대의 미국에는 소득세가 없었다는 점이다.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미국에서 소득세가 실질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1913년이다. 다시 말해 소득세가 없었던 1870년의 미국에서는 헨리 조지가 주장했던 것처럼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었다. 토지 소유자들은 관련 세금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세가 도입된 이후에는 토지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에 소득세의 형태로 세금이 부과되기에 헨리 조지의 주장은 소득세를 통해 반영됐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소득세가 부과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을 근거로 헨리 조지가 주장했던 토지세를 부과하자고 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잘못된 판단이다. 서양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서양의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세금은 비체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폭력을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폭력으로 전환해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의회의 동의가 있으면 세금을 부과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소유권을 침해하는 세금을 정당화 한다면, 그것은 비체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세금에 저항했던 역사의 본질을 무시하고 권력을 가진 다수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 국가에서 세금의 의미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는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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