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훈 UNIST 총장

지난 2015년 12월12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회의의 마지막 날, 마침내 ‘파리 협정’이 채택됐다.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지구의 평균기온이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유지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에 전 세계 195개국이 동의한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파리 협정이 규정한 신(新) 기후체제가 본격 적용되는 2021년이 도래했다. 신 기후체제의 원년에 발맞춰 정부도 지난해 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산업과 경제, 사회 전 영역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제 탄소중립은 환경단체 구호나 정치적 수사가 아닌 현실에서 이뤄야할 목표가 됐다. 질문은 ‘탄소중립이 필요한가?’에서 ‘탄소중립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앞선 질문에 세계는 ‘탄소중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과학기술이 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일상 대부분은 탄소배출과 연결돼있다. 차를 탈 때는 물론 요리를 할 때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산업계는 두말할 것도 없다. 산업연구원이 추산한 국내 산업계 전체의 탄소중립 실현 비용은 1000조원에 달한다. 이 험난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술’이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태양광, 수소, 풍력발전 등 친환경 미래 에너지를 향한 도전과 환경에 지속적인 부담을 가하는 폐기물 문제에 맞서는 연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 기술이 탄소중립 실현에 단 1%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국내에서만 10조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신 기후체제를 맞이하는 과학기술계에 탄소중립을 실현할 친환경 연구개발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달라진 시대에 발맞춰 교육과 연구의 모든 영역에서 대대적인 전환이 이뤄져야하는 시점이다.

우선 앞으로의 엔지니어는 ‘친환경을 아는 엔지니어’여야 한다. 친환경을 아는 엔지니어는 연구개발과정 전반에 걸쳐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는 공학자다. 과거 공학자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재료와 공정을 찾아내고, 이를 실현하는 데 집중해왔다. 아쉽게도 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고려는 중요치 않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엔지니어를 길러내야 한다. 이를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탄소중립을 이끌 연구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기술의 빠른 실증과 적용이다. 2050년 탄소중립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친환경 연구개발에 많은 힘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이들 기술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신속한 실증연구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논문과 특허에 그치지 않고, 현실세계의 탄소배출 감소에 직접 기여할 기술을 더 빠르게 등장시켜야 한다.

탄소중립을 이끌 새로운 인재육성과 발 빠른 기술개발의 책무를 수행할 첫 번째 주자는 바로 대학이다. 우리가 향할 미래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대학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코로나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들에게 큰 기회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을 이끌 친환경 엔지니어를 육성하고, 미래를 바꿀 실증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낼 수 있는 대학에게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UNIST는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 혁신 선도자로 과감히 도약하고자 한다. 차세대 청정에너지 분야에서의 선도적 경쟁력과 환경 분야의 우수한 연구진은 그 도약의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친환경 그린 테크놀로지를 실증할 수 있는 연구기반 마련과 탄소중립을 이끌 인재육성과 연구개발을 전담할 대학원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탄소중립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UNIST만의 답변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은 UNIST만의 것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탄소중립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은 한 대학이나 도시, 지역을 넘어 전 세계가 꿈꾸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UNIST의 꿈과 도전이 울산과 대한민국, 그리고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용훈 UNIST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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