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베란다도 정원 될수 있듯이
정원이 가진 넓은 스펙트럼 이해해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융통성 필요

▲ 진혜영 국립수목원 정원연구센터장 태화강 정원박람회 조직위원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정원의 정의에 대한 논의, 그것이다. 2011년 국립수목원은 수목원·식물원의 정의, 기능, 역할에 대한 고민과 실행을 해오면서 정원이라는 포괄적 키워드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원의 ‘사전적 정의’ 때문에 정책 논리를 펼쳐나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위키백과에서는 정원(garden)은 헤브라이어 ‘gan(울타리 또는 둘러싸는 공간이나 행위)’과 ‘oden(즐거움, 기쁨)’ 또는 ‘eden’의 합성어로, 영어 단어 yard, court 및 라틴어 hortus(호르투스)는 어원이 같고, 모두 폐쇄된 공간(an enclosed space)과 관련된다고 정의한다. 영국식 영어의 garden은 좁게 폐쇄된 땅(a small enclosed area of land), 미국식 영어에서는 뜰(yard)과 관련된다. 국내 Naver에서 정원(庭園)은 집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이다. 위키백과는 ①미관이나 위락 또는 실용을 목적으로 주로 주거 주위에 수목을 심든가 또는 이 밖에 특별히 조경이 된 토지, ②집안의 뜰로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는 법적·제도적 정원인데 ‘수목원·정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책적 방향을 포괄하고 있다.

이처럼 사전적 정원은 공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땅에 국한되며, 소유에 기반한 목적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대개는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정원의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정원은 개인 영역에서 공공 영역으로 변화와 진화를 겪어가고 있으며, 차를 타고 원거리를 가지 않아도 자연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대만족일 것이다. 2021년 현재, 정원은 정원인프라가 생활권 내로 확충되고, 도심의 비싼 땅값 탓에 개인이 아닌 공공이 정원을 만들고, 실외정원과 실내정원을 아우르며, 시민과 함께 가꾸어가고 있다. 이를 정원과 정원활동, 가드닝(gardening)이라 이야기한다. 해마다 개최되는 국내 정원박람회는 그 수와 질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인가. 국내 정원디자이너들은 해외 유수한 가든쇼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수상의 쾌거를 전했다. 정원은 조경, 원예, 산림의 업역을 넘어서 건축, 영상, 실감형 콘텐츠와 연계하여 새로운 시도가 계속됨으로써 문화적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5년의 눈부신 발전 안에서 정원이 그린인프라의 실체에서 일상적인 문화로 진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그리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때문에 사전적 의미의 정원, 학문적 의미에 정원의 영역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정원과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의 뉴노멀(New normal)로 바라보아야 한다. 집안의 베란다 또는 작은 용기에 식물을 심고 내가 그것을 정원이라 생각하고 가꾸면 이 또한 정원이며, 국가나 지자체가 공공을 위해 대규모 정원을 만들어 전시, 교육 등을 제공하는 것도 정원이다. 단지 필요에 의해서 조성주체, 목적과 기능, 주제 등이 다를 뿐이다.

이제는 정원이 가진 넓은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정원, 조경, 원예, 숲, 이 모든 영역에서 보이는 정원과 보이지 않는 정원이 존재할 수 있으며, 변화를 도모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투입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자연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물론 앞으로도 ‘정원’의 학문적·사전적 정의에 대한 논란은 있겠지만,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정원은 ‘정의’의 개념이 아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필수적인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진혜영 국립수목원 정원연구센터장 태화강 정원박람회 조직위원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