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일자리로 어깨 무겁지만
시대의 앞날 주도하는 젊은이들
고난·역경 극복해 나갈수 있어

▲ 남호수 동서대 융합전자공학과 교수

매년 이맘때쯤이면 짧게는 4년 길게는 6~7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대학 캠퍼스를 나서는 학생들의 설렘으로 교정이 가득 찬다. 30여 년 전의 대학 졸업식 풍경은 참으로 작금의 모습과 대비된다. 교문 앞에 장사진을 친 꽃다발 상인들, 인산인해의 축하객,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 가족,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새로운 길로의 출발을 축하하는 모습들로 꽉 차 있었다. 영어로 졸업을 ‘commencement(시작)’라고 하듯이 졸업은 또 다른 삶에의 여정을 출발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교육제도와 교육기관이 운영되면서 배움에는 시작과 마무리가 있었으니, 가령 조선 시대 성균관에서 통산 300일 이상 기숙하며 공부한 유생에게는 문과 초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으며, 입학은 엄격하고 까다로웠지만, 재학 기간이나 졸업일은 따로 정해진 게 없어서 과거에 합격한 날이 곧 졸업이었던 것인 셈이었다. 근세까지 이어진 서당에서의 졸업식은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굳이 일컫는다면 ‘책씻이(책거리)’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다. 졸업이 입학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한 것은 근세기에 이르러 현대식 학교가 설립, 운영되면서부터인데, 의식으로서의 졸업식에 규모나 의미가 더욱 크게 부여되고, 졸업증서가 하나의 자격으로서 인증 효과를 보임과 동시에 다음 단계의 교육기관으로의 편입이나 사회진출로의 중요한 수단으로 대두되면서 졸업식은 사회의 관심을 끄는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졸업증에 대한 과도한 평가와 인식은 과열된 고등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학력과 학벌 위주의 사회로 치닫게 했다. 한때는 대입 경쟁의 격화로 과열과외, 재수생 누적, 인성교육의 부재 등의 문제로 대입 입학정원을 대폭 늘리고, 대신 졸업을 까다롭게 제한함으로써 대학에서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졸업정원제가 시행되기도 하였다. 물론 국가의 개입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30%를 탈락시키는 문제, 대학별 특성과 교육이면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기계적인 졸업정원 조정문제 등으로 흐지부지되었고, 시행 10년도 채 안 되어 폐지되고 말았다. 대학 입학정원만 크게 늘려놓은 상태로 말이다. 그래도 당시, 산업화, 개발시대를 관통하면서 한때는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자격증으로 매겨져 사회진출에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우골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대학에 보내려 했고, 대학교육 통하여 국가의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가 되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 두 가지 문제가 대학 문을 나서는 젊은이의 어깨를 무겁게 잡아당기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로 마지막 1년의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생전 겪어보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 지난 한 해였다. 보통 4학년 1년간 심화학습과 경험 및 현장 중심의 실습, 인턴십 등의 프로그램으로 꽉 찬 한 해를 보내고 진로를 개발하여 교문을 나서는데, 코로나 와중에 고군분투를 벌였으나 많은 부분이 틀어지고 엉켜버려 힘들어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거기에다 졸업식마저 비대면으로 하게 되는 현실임에랴. 또 다른 하나는 여러 복합적인 연유로 참으로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에 당찬 패기와 다져진 실력으로도 어깨가 처지는 현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졸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아낄 수는 없다. 어느 사회든 그 시대의 가까운 앞날을 주도하는 세대는 젊은이였다. 개인의 역경, 사회적 고난, 시대적 불운, 이 모든 것 또한 극복해 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역사는 쉬이 단절되지 않고 진보하는 것이다. 꽃길만 걸을 수 없는, 오히려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청춘에게 다시 새 출발의 격려와 힘을 보태고 싶다. 그래도 졸업, 다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남호수 동서대 융합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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