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옥 호계고 교사

이월의 바람이 분다. 햇살이 내린다. 조용한 비가 내린다. 바로 요 어디쯤 눈길이 닿을 어느 곳에 봄이 온 듯 포근하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의 매서운 바람이 분다. 종잡을 수 없는 이월 까칠한 봄날이 지나고 있다. 더 할 나위 없이 어여쁜 꽃들을 위해, 하염없이 여린 새순을 위해 어쩔 수 없다. 천 갈래 다른 바람결에 용하게 찾아낸 봄기운을 느끼고 통도사 홍매는 진작 꽃을 피웠다. 수많은 새잎은 딱딱한 껍질 속에서 표정을 감추고 있다. 삼월을 준비하느라 학교는 종종걸음이다. 아이들은 한 학년 올라가느라 정든 짝과 헤어졌고. 누구와 만날지 걱정된다. 그럼에도 설레고 기대된다.

“선생님, 우리 반 배정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나도 몰라. 전에 얼핏 봤는데 잘 기억이 안나. 첫날에 말해줄걸.” “왜 미리 얘기 안 해줘요?” “글쎄다. 담임들에게도 파일공유는 안 하던데.”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을 학교에 오라고 했다. 봄방학을 했고, 이미 헤어졌는데 못다 한 것 매듭짓기느라. 아이들 표정이 서늘해졌다. 얇은 양파 껍질이 하나 생긴 듯이. 뭔지 모를 거리가 느껴지는 낯빛이다. 나는 좀 쓸쓸해졌다.

“송반장~ 니 임기가 2월28일까지인걸 몰랐나?”

오늘 좀 더 남아야한다며 우긴 내 말이다. 옆에 앉았던 아이들이 쿡쿡 웃으며 맞장구친다.

“그래, 니는 아직 우리 송반장이지~”

얼마 전 영화 ‘인 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 Haevnen)’를 보았다. 열 살 난 소년 크리스티안의 표정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어른이라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하고 밀어내는 표정. 분노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 눈빛.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아이들하고 같은 존재의 위치에서 얼마만큼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아이를 아이로만 보며 말하기 쉽다. 평등한 대화의 자리로 초대하지 않는다. 크리스티안의 아버지 클라우스처럼. 크리스티안의 적개심은 교실에서 가끔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표정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딱딱해지기 전에, 강력한 힘으로 똘똘 뭉치기 전에 말랑말랑 했을 것이다. 다루기 쉬웠을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한 두 번이 아니었을 테고,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쌓이고 쌓일 수밖에 없는 일을 겪었을 것이다. 또 어쩌면 너무 감당하기 힘든 어떤 일로 단번에 딱딱해졌을 것이다. 표정을 감출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살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딱딱함을 문제 삼을 것이다. 싸가지 없다고 나무랄 것이다.

벌써 삼월이 요 앞에 왔다. 삼월에 꼭 해야 하는 일 하나는 아이들 표정을 살피는 일이다. 바쁘다고 미루고 뒷날을 기약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표정으로 이미 많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충분히 건네고 있을 것이기에. 이 시기를 놓치면 꽃 피는 날을, 새순 돋는 날을 우리는 맞을 수 없을 것이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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