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조례’가 있다. 2019년 11월7일 개정된 이 조례는 제1조 목적에서 ‘보행환경의 개선에 관한 기본사항을 규정하여 보행환경시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하여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조례가 개정된지 1년여가 지났으나 울산 지역의 보행환경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노약자나 장애인 등 보행약자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확보되지 않은 곳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애초에 인도와 찻길이 구분 없이 조성돼 있는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상당수의 인도(人道)마저 상가들의 가판대와 광고시설, 심지어 벤치와 화분들이 차지하기 일쑤다. 특히 슈퍼마켓이나 과일가게 등은 아예 인도를 진열공간으로 삼고 있고, 음식점들은 의자와 벤치를 배치해 흡연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선 옷가게들이 수십 벌의 옷이 걸린 옷걸이를 길거리에 내놓기도 한다. 또 단차 없이 선만 그어져 있는 도로에선 인도를 주차 차량에 뺏겨 보행자들이 아예 찻길로 걸어야 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7~2019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1315명인데 이 중 보행사망자는 39.5%인 4464명으로 조사됐다.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4명은 보행자라는 의미다. OECD 평균(18.6%)의 2배나 된다.

보행환경의 악화를 도로환경 탓으로 돌리자면 개선이 쉽지 않다. 차량 숫자의 급증으로 인해 찻길 중심으로 조성된 도로환경을 보행 중심으로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지 확보도 쉽지 않고 엄청난 예산도 수반돼야 한다. 손쉽게 할 수 있고 효과도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방법은 바로 자치단체와 경찰의 도로 무단 점용 단속이다. 삼산동 디자인거리처럼 엄격하게 단속을 하는 지역에서는 무단 점용 사례를 거의 볼 수 없다.

보행권이란 보행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1950년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됐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도로는 차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보행권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낮다. 지자체마다 보행권에 대한 조례를 앞 다투어 제정하고는 있으나 단지 문서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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