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②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통치자와 시민들 연결한 세체니다리
페스트지역의 본격적인 개발 신호탄
헝가리 민족의 주체성 되찾는 계기도

건국 1000주년 기념해 세운 영웅광장
초대 국왕에 바친 성 이슈트반 대성당
중세·근대양식 집합체 국회의사당 등
기마민족의 기원·역사 고스란히 담아

부다페스트는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의 합성이다. 도나우 강변을 중심으로 평야 지형이 페스트 지역이고, 부다 지역은 반대편 언덕 위에 조성됐다. 중세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언덕 지형의 부다는 왕궁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자의 영역이며, 평야의 페스트 지역은 시민들의 생활영역이 된다. 두 지역이 통합된 것은 1849년 사슬다리가 놓이고부터라고 하니 통치자와 백성들의 간극이 강 너비만큼이나 넓었던 모양이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며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듣는다. 도나우강처럼 잔잔하고 우아하게 흐르기도 하고, 초원에서 달려오는 말발굽처럼 용맹하기도 하고, 집시여인의 춤처럼 애증을 초월한 몰아지경의 춤사위를 보이기도 한다. 게르만이나 라틴계의 유럽인들과는 전혀 다른 헝가리인들의 서정이 물씬 배어있다. 유럽이면서도 유럽 같지 않은 독특한 감성, 인종적 차이와 복잡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의 정체성이다.

▲ 평야지형에 조성된 페스트 지역. 여러 건축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응용된 국회의사당은 새로운 헝가리의 상징이다.

세체니 다리의 건설은 두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 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페스트 지역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이며, 둘째는 외세로부터 헝가리 민족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되찾기 위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다리가 건설 중이었던 1884년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항쟁이 발발했고, 이어 역사적 자긍심과 주체성을 기념할만한 대규모 랜드마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기념물들을 기준으로 새로운 페스트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안드라시 끄트머리에 있는 영웅광장은 바로 국가의 기원을 나타내는 기념광장이다.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해 1896년에 만든 것이니 896년을 국가기원으로 설정한 것이다. 로마시대의 기념비를 모사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광장의 중심이다. 양옆에는 로마 바티칸 광장처럼 원호를 따라 배치된 열주랑이 광장을 감싸고 있다.

기둥 위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한손에는 황금십자가를, 다른 한손에는 왕관을 들고 서 있다. 기둥 아래는 마자르 7부족의 족장들이 늠름하게 말을 타고 나타난다. 헝가리 무곡처럼 초원 기마민족의 용맹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초원의 유목민족이라는 민족의 기원과 서구 기독교 문명의 수용이라는 역사적 과정이 건축적 장치와 조각으로 표현된 것이다.

페스트지역을 대표하는 두 개의 랜드마크 중 하나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다. 페스트 지구에서 이보다 더 높은 건물은 없다. 헝가리를 기독교 국가로 만든 초대 국왕 이슈트반에게 헌정되었기에 그 이름을 얻었다. 이 역시 건국 1000년의 기념물로서 1851년 착공했고 1896년에 맞추어 완공한 것이다. 심지어 첨탑의 높이까지도 건국연도인 96m에 맞추었다. 영웅광장이 민족의 상징이라면 이 성당은 종교의 상징이라 하겠다.

파사드는 유럽의 어느 성당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장중하다. 19세기에 지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전적인 스케일과 미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건축의 특정한 양식에 한정된 건축은 아니다. 전반적으로는 르네상스 양식이지만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입구는 로마 개선문 위에 그리스 신전의 삼각형 페디먼트 지붕을 융합한 형식이다. 중앙에는 거대한 큐폴라를 두고, 양쪽에 첨탑이 균형과 형식미를 강조한다. 내부에는 볼트형 천장과 큐폴라에 그려진 천장화가 르네상스적 장중미로 장식되었다.

‘도나우 강의 진주’라는 찬사를 받는 부다페스트, 만일 국회의사당이 없었다면 이러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이 건물이 바로 진주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물은 고풍스럽기 짝이 없지만 결코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이 역시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기념물로 1880년에 건립된 것이다. 민족적 자존과 주체성을 유럽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새로운 헝가리의 상징으로서 의사당은 서구건축의 모든 권위적 형식보다 우월한 디자인이어야 했고, 헝가리의 자재와 기술과 인력만으로 구현되어야 했다.

건물은 여러 양식들을 복합적으로 응용해 디자인되었다. 구심점이 되는 중앙 돔은 르네상스 양식의 응용이다. 부르넬리스키가 만든 피렌체 대성당의 8각형 큐폴라를 응용하여 그는 16각형의 큐폴라를 만들었다. 외벽은 고딕식 첨탑으로 장식되었다. 외벽의 기둥들이 벽체를 타고 올라 지붕에서 뾰족한 첨탑이 된다. 날렵한 기둥의 조소적 장식이 고딕의 장중함보다는 현란한 판타지를 만든다.

365개의 첨탑은 당연 1년을 상징한다. 마치 병사들이 창을 번뜩이며 건물주변을 호위하는 듯하다. 내부공간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으로 장식되었다. 황금빛으로 휘황한 내부 공간은 마치 중동의 호화 모스크 만큼이나 현란하다. 특히 16개의 기둥이 상승해 만들어진 큐폴라의 천장은 황금우산을 펼친 모습이라고 할까. 태양 빛이 발산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돔 천장에 대한 창의적 디자인이 경탄스럽다.

페스지구에 있는 중앙 시장마저도 고전미가 넘치는 건물이다. 유리로 천장을 덮은 근대건축의 대공간이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파리 오르세미술관을 연상시킨다. 관광객과 시민들이 복작거리는 시장은 활기로 가득하다. 그곳에 시대를 넘어서는 헝가리인들의 역사적 과정과 현재적 일상이 공존한다. 역사는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고 새로운 유행에만 집착할 것도 아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긴 시간의 맥락은 정체성의 핵심이 된다. 도시 경관의 역사적 콘텍스트를 보존하면서도 활기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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