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겨울 속에서 봄을 보려면/ 신도 경건하게 무릎 꿇어야 하리라/ 내 사는 은현리서 제일 먼저 피는 꽃/ 대한과 입춘 사이 봄까치꽃 피어/ 가난한 시인은 무릎 꿇고 꽃을 영접한다/ 양지바른 길가 까치 떼처럼 무리지어 앉아/ 저마다 보랏빛 꽃, 꽃피워서/ 봄의 전령사는 뜨거운 소식 전하느니/까치가 숨어버린 찬바람 속에서/ 봄까치꽃 피어서 까치소리 자욱하다…(하략)

‘봄까치꽃’ 일부(정일근)

섭씨 20℃를 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맵고 찼던 추위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대기에는 봄 기운이 가득하다. 길섶에는 봄을 알리는 봄까치꽃이 손톱만한 크기로 피었다. 까치가 봄소식을 물어온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봄까치꽃.

그런데 정확한 이름은 듣기에도 민망한 ‘큰개불알꽃’이다. 큰개불알꽃은 2월에 꽃을 피우고 8~9월에는 작은 씨주머니가 열린다. ‘큰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은 씨주머니 속의 씨방 모양에서 따 온 것이다. 물론 작명은 일본 학자가 했다. 이제는 우리의 꽃에 제 이름을 되찾아 줄 때가 됐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꽃은 제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이다.

이 꽃을 보려면 시인처럼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다. 겨울 속에서 봄을 보려면 신도 경건하게 무릎 꿇어야 하리라…. 큰개불알꽃은 ‘큰’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작고 깜찍하다. 제대로 보려면 팔꿈치를 짚고 꽃 속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래야 겨울 속의 봄을 캐낼 수 있다. 이 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개와 연관된 봄의 전령사는 또 있다. 바로 시냇가에 피는 버들강아지다. 버들강아지는 솜털처럼 보드라운 강아지의 털과 닮았다고 해서 ‘버들강아지’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 2018년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에는 봄을 맞이하는 글귀 하나가 붙었다.

‘버들강아지 반가워 꼬리 흔든다. 봄이 왔나 보다’

그런데 과연 버들과 강아지는 연관이 있을까. 대부분 학자들은 ‘버들강아지’는 ‘가야지’와 ‘강아지’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버들개지’와 ‘버들강아지’는 둘 다 표준어다.

홍매가 피고 설을 전후해 복수초가 피더니, 이윽고 보랏빛 봄까치꽃이 비단처럼 지상에 깔렸다.

까치가 놀러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봄까치꽃’ 일부(이해인)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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