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육 울산시 시민건강국장

2020년 1월20일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오고 한달여 후 2월22일 울산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1년이란 기간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질긴 금줄(禁繩)을 걸고 우리는 일상을 몰수당했다. 역병의 범접을 막으려 치열하게 버텼지만 코로나19는 높게 쳐진 금줄을 넘어 들어와 어느새 전국적으로 9만명, 울산에서 1000명에 이르는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지난해 봄 울산은 100일 동안 청정지역 명성을 이어갔지만 광복절 광화문집회를 분기점으로 더 이상 안전지역일 수 없었다. 이후 고스톱 모임, 아랑고고 장구모임, 양지요양병원 사태, 인터콥 선교회 등 집단발생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울산대학교병원이 사명감을 가지고 다른 어떤 공공병원보다도 효과적으로 대응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울산시 공공의료체계와 의료자원을 한계상황까지 내몰았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치르며 정부와 의료계는 공중보건위기가 상시화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 결과 질병청을 설치해 코로나19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포스트 코로나 대비 대대적인 공공의료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울산시도 시민건강국을 설치했으며 울산의료원을 건립해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를 마련하기로 했다. 팬데믹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론이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 격리, 해외입국자 임시생활시설, 생활치료센터 등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방역체계가 만들어졌다. 3T 전략, K-방역, 참여방역이라는 여러 신조어까지 나왔다. 백신도 전통적인 생백신·사백신 대신 바이러스벡터·mRNA 라는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백신을 접종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조직적·과학적 체계를 갖추고도 좀처럼 멈추지 않는 코로나19 앞에서 잠시 다른 위안거리를 생각해 본다. 마침 입춘이 지나며 꽃이 피고 있고, 설날이 지나 대보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미 곳곳에 매화와 동백이 피었지만 화끈하게 즐길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금줄이 높낮이만 오르락내리락 할 뿐 여전히 단단하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금줄은 부모 자식 간의 임종, 병문안, 명절방문 등 천륜마저 막아버렸다. 필자는 작년 가을 이후 카페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을 금지당하고, 인적이 드문 가까운 야산을 다니며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업무를 맡으면서 그 마저도 사치가 돼버렸다. 그렇다고 작년부터 이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앓는 소리도 못할 노릇이다.

울산 사람이라면 다들 알다시피 근대 이전 역병이 돌면 궁궐과 관청에서는 격식을 갖춰 처용무(處容舞)를 시연하고, 마을에서는 농부와 아이들이 대보름을 전후해서 매귀악 놀이를 했다. 그런데 이웃 통도사에도 재미있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대광명전에 걸린 화마진언(火魔眞言)이 불과 역병을 막는다 하여 작은 편액으로 만들어 달았고, 소금단지에도 써서 곳곳에 올려 두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吾家有一客/定是海中人/口呑天漲水/能殺火情神’이다. 해석하면 “우리 집에 손님 한분 계시니, 바다에 사시는 분이다.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불을 물리칠 수 있네”라는 뜻이다.

새해 1월1일 감염병관리과가 출범한 첫날 직원들이 코로나19 종식 기원제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름 정성을 다해 음식 몇 가지를 마련해 진설한 후 초를 켜고 향을 피웠는데, 지방(紙榜) 대신 검은 마스크를 걸었다고 한다. 그 효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올해 들어 이어진 몇 차례 집단발생 위험에서 울산이 피해간 것은 사실이다. 이제 곧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공급된다. 우리의 방역 의지가 더해질 때 코로나19는 반드시 물러갈 것이다. 시민 모두 그때까지 조금만 더 참여방역에 힘을 내 주시기를 바란다. 하루빨리 코로나19를 끝내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가면과 부적뿐만 아니라 마스크와 백신이 있는 이상 그 날은 곧 올 것이다. 김상육 울산시 시민건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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