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이란 동결자산 활용 방안 동의 한 목소리…금액 등 미정
원화계좌에 묶인 이란 70억 달러, 美 동결 풀어야 활용 가능
美, 이란과 핵합의 복귀 여부가 관건…협상 때 카드로 쓸 듯

▲ 21일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에서 유정현 주이란대사와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장이 회담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한국 내 동결자금의 이전 및 사용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에 동결된 이란 원화자금의 활용방안에 대해 한국과 이란이 의견 접근을 이룬 가운데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이 자금의 활용을 현실화하려면 대이란 제재를 통해 이란의 원화 계좌를 동결시킨 미국의 해제 조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이란은 동결자산 활용 방안에 동의가 있었다는 점에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구체적인 금액이나 향후 절차를 놓고서는 주안점이 사뭇 다르다.

이란은 현지시간 23일 한국이 동결된 이란 자산을 풀어주는 데 동의했다면서 첫 번째 조치로 10억 달러를 돌려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정부 대변인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기본적인 의견 접근이 있었다면서도 “실제 동결자금의 해제는 미국 등 유관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10억 달러 등 구체적인 금액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런 상황은 한국과 이란이 동결자금 활용 방안을 합의해도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적 제약 탓이다.

한국은 2010년부터 IBK기업은행 등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개설된 원화 계좌를 통해 원유 수출 대금을 지급했다.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문제 삼아 달러 계좌 결제를 막는 제재를 가하자 원화 계좌 활용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이던 2018년 미국이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이 계좌를 통한 거래도 중단됐다.

한국이 이란에 지불해야 할 대금 70억 달러가 동결됐고, 이란 정부는 그동안 이 자금을 해제하라고 요구해왔다.

결국 원화 계좌를 풀어주는 미국의 조처가 뒤따라야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미국이 전향적 태도를 보일 것인지는 미국과 이란 간 핵합의(JCPOA) 복귀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많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시절인 2015년 이란이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독일 등과 체결한 핵합의는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제재를 완화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다며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원화 계좌를 동결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진 조처였다.

하지만 핵합의 복귀를 공약으로 내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분위기가 다소나마 전환됐다.

미국 입장에서 동결 자금 해결은 이란에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이란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합의 탈퇴 후 불이행으로 돌아선 합의사항의 준수를 주문하며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역내 불안정 활동까지 포함한 협상을 벌이자고 요구한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부활한 제재의 해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양국 간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동결자금 해제 문제 역시 미국이 이란과의 밀고 당기기 속에서 전체 협상 판도를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는 외교가의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관건은 미국이 협상 유인을 위해 동결 자금 문제를 선제적으로 풀어줄지, 아니면 협상 개시 후 보상책으로 제시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만, 현재로선 후자 쪽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관측이 높다.

미국 내 이란과 협상 재개에 부정적인 보수 진영의 비판론이 적지 않은데다 이란이 핵합의 불이행 강도를 점점 높이는 상황에서 당근책부터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동결 해제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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