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통과 못한 고위공직자 최다
검찰인사 논란·권력비리수사 지연
헌법질서 붕괴 민주주의 위기 직면

▲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 국제관계학

‘딥 스테이트(Deep State: 국가 내 국가) 가설’은 겉으로 드러난 헌법적·법률적 국가체제 이외에 그 국가 내에 또 다른 권력체제가 작동하여 국가기밀을 별도 특별관리하며 심지어 헌법상의 통수체제나 국가운영방식을 왜곡하는 별도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을 포함한다. 미국 정치에서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고별연설에서 그 위험성을 지적했던 ‘군·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경우가 이러한 가설에 해당하며, J. F. 케네디 미 대통령 암살사건이나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 등 미제로 남은 미국 정치사의 얼룩들이 그 결과로 언급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자신을 ‘딥 스테이트’의 희생자로 지칭하며 권력이양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가설이 귀결되는 지점은 ‘헌정 질서의 파괴와 그림자정부(Shadow Government)의 득세’이다. 민주주의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가 그 기초인데, 이러한 것들은 완전히 무시된다. 겉으로 드러난 장차관들은 허수아비와도 같이 월급이나 받고 사진이나 찍히는 일들이 그 임무일 뿐 국가의 중대사는 그림자정부에서 다 만들어지고 관리된다. 장관 자리에 비전문가들이 많아지고 특히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모든 것들이 독점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그 병폐적 현상에 해당한다.

국민들은 장관이나 차관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자신들의 문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림자권력’에 의하여 장악된 정부는 정책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림자권력’이 정한 대로 밀어붙인다. 간혹 중요한 인사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인사권자의 헌법적 권한과 절차적 정당성은 무시되고 기정사실(fait-accompli)에 의하여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림자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사가 강행되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인사권자 또는 통수권자의 권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소위 ‘레임덕(lame-duck)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황당한 소설, 그것도 저급한 ‘음모론’에 입각한 정치소설들은 미국에서 TV드라마 소재로 널리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요약하자면 ‘딥 스테이트 가설’이 현실화하면 헌정질서가 무너지며 소위 ‘그림자정부’가 득세하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럼 자다가 봉창 뜯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왜 가설타령을 하는 것이냐?

사실 그 동안 문재인 정부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인사청문회 개최 이후의 역대정부들 중 법적·도덕적 하자가 많아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취임한 고위공직자들의 수가 가장 많은 정부가 되었다. 이 정부의 법무부장관들은 특히 골칫덩어리였다. 그런데 최근 검찰인사에서 현 법무부장관은 인사절차 위반과 대통령의 헌법위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심지어 신임 민정수석의 사퇴소동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고 각종 권력비리 관련 수사가 법무부장관에 의하여 결과적으로 방해를 받기도 했다.

또한 관련재판 중 일부는 어떤 이유에선지 기소된 지 만1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열리지도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명국가에서는 단 한곳도 운영하지 않는 ‘공수처’가 버젓이 합헌판단을 받았다. 또한 대법원장은 녹취록에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억력’ 타령하며 수치스러운 자리보존에 여념이 없다.

결국 헌법질서가 파괴되고 법률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관한 문제제기가 언론이나 방송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치적 편향성이 높아진다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득 ‘딥 스테이트 가설’을 다시 들여다본다. 끝까지 보자.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 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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