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홀로 기댄 산창에 밤 기운이 차운데(獨倚山窓夜色寒)/ 매화나무 가지 끝에는 둥근 달이 떠올랐네(梅梢月上正團團)/ 구태여 산들바람 불어오지 않아도(不須更喚微風至)/ 맑은 향기 스스로 온 뜰에 가득하리라(自有淸香滿院間)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陶山月夜詠梅, 퇴계 이황)

퇴계 이황은 지독한 매화 신봉자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면서 유언을 대신했다. 그는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매화 화분과 마주 앉아 대작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1000원짜리 앞면에 퇴계 선생의 얼굴과 함께 매화가 그려져 있을까.

통도사 홍매를 시작으로 매신((梅信)이 울산으로, 경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월매도(月梅圖)’는 달과 매화를 함께 그린 그림을 말한다. 예로부터 달과 매화는 한 세트로 여겨졌다. 월매(月梅)가 그림의 주제가 된 것은 퇴계 만큼이나 매화를 사랑했던 중국 북송의 시인 임포의 시(詩) 때문이다. 임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매화를 아내로 삼았다. 임포의 매화 시는 여러 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시의 두 구절은 북송의 대문호 구양수가 절찬한 것이다.

성근 그림자 비스듬히 맑은 물에 비치고(疏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은은한 향기 황혼의 달빛 속에 떠도네(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이 두 구절은 매화그림에 자주 화제(畵題)로 활용됐으며, 월매도의 연원이 됐다. 특히 이 시의 ‘암향부동(暗香浮動)’은 저녁무렵 매화 향기를 말하는데, 붓글씨에 자주 인용된다. 이렇듯 매화는 밤에 달과 함께 봐야 제 멋이다. 퇴계 이황 선생도 달밤에 핀 매화를 보며 시를 많이 지었다.

조선 후기 화가 조희룡은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임포가 벼슬을 뒤로 한 채 초옥을 짓고 살았다는 고사를 소재로 그린 것이다. 이렇듯 선비들은 서재에 앉아 매화가 꽂힌 화병을 두고 글을 읽는 모습을 자주 그렸다.

매화는 5만원권 지폐에도 나온다. 앞쪽에는 신사임당이 있고 뒷면에는 어몽룡의 ‘월매도(月梅圖)’가 그려져 있다. 이 매화나무는 표면이 거칠고 강인한 인상을 주지만 꽃은 어여쁘기 그지없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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