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학생은 교사나 교수의 소유물이 아니며, 직원은 상사의 소유물이 아니며, 국민은 대통령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당연히 아내도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며, 병사도 장교의 소유물이 아니다. 상하관계는 필요에 의한 것일 뿐 본질은 공존이 전제된 수평관계이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직장폭력, 국가폭력은 대체로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데서 생긴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주나라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인데 백성들이 오히려 작다고 여기고, 나의 동산은 사방 40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였지만 꼴 베고 나무하는 자들이 그곳으로 가고, 꿩 잡고 토끼 쫓는 자들이 그곳으로 가서 함께 하였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들으니, 관문 안에 동산이 사방 40리인데, 동산의 고라니나 사슴을 죽이는 자를 살인의 죄와 마찬가지로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방 40리로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들이 그 동산을 크다고 여김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제선왕은 자신을 위해서 사냥터를 만들고 그 사냥터를 혼자 이용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스렸다. 반면에 제선왕보다 넓은 사냥터를 가졌던 문왕은 자신의 사냥터를 백성들과 함께 이용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제선왕의 사냥터는 작아도 크다고 생각한 것이고, 주나라 문왕의 사냥터는 커도 작다고 말한 것이다. 제선왕은 작은 사냥터를 갖고서도 늘 근심에 쌓여있었고, 주나라 문왕은 큰 사냥터를 갖고 있었어도 전혀 근심하지 않았다. 제선왕은 즐거움을 혼자 누리려고 했고 주나라 문왕은 백성과 함께 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백성은 왕의 소유물이 아니며, 따라서 왕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왕의 즐거움은 백성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나누는 데서 오는 것이다.

오늘 아침, 부모의 폭력으로 죽은 아이, 남편에게 맞은 아내, 그리고 민간인의 사망자 수가 늘었다는 미얀마 사태에 관한 뉴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며, 사람의 행복은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데서 오는 것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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