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 (8)전 세계 암각화 세계유산(문화유산)

▲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경관

2019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 현황은
전 세계 167개국에 걸쳐 1121점 등재
그 중 암각화 형태 세계유산은 25점
이른 시기 유산으로 지정된 사례 많아
2000년대 이후 암각화 등재 다시 활발
반구대, 유일무이한 암각화 아니지만
인류역사 문화에 보편타당한 가치 어필

해마다 7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렸다. 그런데 2020년 지난 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총회가 열리지 못했다. 해마다 증가하던 유네스코 세계유산 숫자는 2019년 기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전 세계 167개국에 분포하며 총 1121점이다. 그 중 문화유산은 869점, 자연유산은 213점, 복합유산은 39점이다.

1121점에 달하는 세계유산 중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이 있는 ‘대곡천 암각화군’처럼 바위그림 형태의 세계유산은 몇 점이나 될까.

사람들 중에는 반구대 암각화가 전 세계 유일무이 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전 대륙에 걸쳐 수천년 전 새겨진 암각화 사례는 예상외로 많다. 그 중 세계유산에 등재 된 암각화는 25점(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검색)이다. 좀더 세분하면 문화유산에 15건, 자연유산에 3건, 복합유산에 7건으로 나뉜다. 비슷한 암각화라도 규모와 형태, 내용과 주변환경 요소에 따라 등재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 몽골 알타이의 암각 예술군

유산이 차지하는 면적이 크거나 바위그림 갯수가 아주 많다고해서 무조건 세계유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암각화 세계유산은 수만여 점에 이르지만, 또다른 유산은 반구대 암각화의 10분의 1 수준인 30여 점 만으로도 세계유산이 됐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의 문화재가 얼마나 보편타당한 인류문명 가치를 지니는 지 세계인을 상대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한 연구조사와 탄탄한 학술이론을 갖추는 건 기본이고 정부와 주민들의 보존의지 역시 현재는 물론 미래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것에서 판가름난다.

이 즈음에서 암각화 형태의 세계유산 사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회에는 전체 25점 중 문화유산에 속하는 15점만 정리하고, 다음 회에 자연유산 3건과 복합유산 7건을 싣기로 한다.

▲ 중국 줘쟝화산 암벽화 문화경관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최초의 암각화는 이탈리아의 ‘발카모니카의 암각화’다. 1979년의 일이다. 이탈리아 동북부 롬바르디아 평원의 발카모니카(Valcamonica)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사시대 암각화들이 모여있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수십 개의 마을마다 암각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의 농업과 항해, 전쟁, 마술에 관련된 주제를 담고 있는 기호와 그림들이다. 숫자는 14만여 점에 달한다. 선사 이후 8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그려진 것이며 시대적으로는 로마, 중세, 근대의 암각화가 공존한다.

이후 리비아 ‘타드라르트 아카쿠스 암각화 유적’(1985년), 멕시코 ‘시에라 데 산 프란시스코의 암각화’(1993년),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 지중해 연안의 암각화’(1998년), 스웨덴 ‘타눔암각화’(1994년), 브라질 ‘세라 다 카피바라 국립공원’(1991년), 중국 ‘다쭈암각화’(1999년), 아르헨티나 ‘리오핀투라스 암각화’(1999년)가 뒤를 잇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가 좀더 활발해 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츠와나의 ‘초딜로’(2001년), 포르투갈 ‘알투 도루 와인 산지’(2001년), 인도 ‘빔베트카의 바위 은신처’(2003년), 탄자니아 ‘콘도아 암석화 유적’(2006년), 키르기스스탄 ‘술라이만투 성산’(2009년) 등이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 이탈리아 발카모니카의 암각화

2003년에는 한 해 2건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올랐다. 짐바브웨 ‘마토보 언덕’(2003년)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암각화가 가장 많이 응집된 곳이다. 석기시대 수렵 채집인들의 삶 이후 농경인이 등장하는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해 준다. 같은 해 등재된 남아프리카공화국 ‘마푼구베 문화경관’(2003년)은 14세기 전후 400여 년간 유지된 왕국의 사회·정치 구조와 발달과정을 잘 보여 준다.

2007년에는 무려 3건의 암각화가 동시에 등재됐다. 나미비아 ‘트웨펠폰테인 암각화 지대’(2007년)는 코뿔소 그림이 많지만 인간과 동물의 발자국, 붉은 황토로 그린 인간의 모습, 6가지 색으로 그린 코끼리·타조·기린도 포함돼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리흐터스펠트 문화·식물경관’(2007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서부의 사막 산악 지형에 걸쳐 있는데, 2000년 동안 지속된 원주민의 반유목(semi-nomedic) 생활양식을 잘 보여준다.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경관’(2007년)은 4만년 인류역사의 증거로 알려져 있으며, 6000개 이상의 뛰어난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말라위 ‘총고니 암각화 유적’(2006년)은 중앙아프리카에서 가장 밀집된 암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127개 구역을 포함한다. 석기시대 후기부터 그 지역에 살았던 바트와(Batwa)라는 수렵 채집자들이 남긴 그림과 함께 후대 농부들이 그린 암각화가 남아있어 이 지역의 특이한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울산시민들에게 친숙한 ‘코아 계곡의 선사시대 암각화’는 1998년 포르투갈 단독 유산으로 1차 등재됐지만 2010년에 포르투갈·스페인 두 나라의 공동유산으로 다시 등재됐다. 수많은 동물 형상이 그려진 수백 개의 암석판이 포르투갈 코아 계곡에 5000점, 스페인 시에가 베르데에 440점 있다. 수천 년 이상에 걸쳐 새겨진 그림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구석기 미술이며 사람들은 이를 노천 유적군이라고 부른다.

몽골 ‘알타이의 암각 예술군’(2011년)은 기원전 1만1000년~기원전 600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북아시아 선사시대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사우디아라비아 ‘하일 지방의 암각화’(2015년)는 아랍인의 선조들이 그들에게 있었던 일을 바위 표면에 남긴 것이다. 오늘날까지 암면조각(Petroglyph)과 명문(銘文)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으며 약 1만 년 동안의 인간과 동물 형상에 관한 역사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중국 ‘줘쟝화산 암벽화 문화경관’(2016년), 스페인의 ‘리스코 카이도와 그란 카나리아 섬의 성산문화경관’(2019년), 캐나다의 ‘라이팅온스톤·에이시내피’(2019년)가 차례로 등재됐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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