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 걸고
지속돼온 미국의 패권추구 행태
무조건적 동참 고민 필요한 때

▲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논리는 국제사회에도 적용되지 싶다. 어떤 국가가 경쟁 국가를 독재 혹은 권위주의라 딱지 붙이고 자신을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면서 패권을 추구할 때, 거기에 동참한 국가 혹은 정치세력은 저절로 민주주의자가 되는 걸까? 최근 미국 고위관리들의 행보와 국내 주류 언론의 반응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미국은 자유를 선언하고 탄생한 최초의 국가다.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실험에 성공한 미국은 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세계질서를 바꾸고자 했고 2차 대전 이후 그 비전을 구체화할 기회를 얻은 듯했다. 냉전시기 미국은 미국적 가치-개인, 자유, 법치, 의회주의, 자본주의-를 세계에 강제했고, 세계는 좋든 싫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미국은 자신의 가치를 ‘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s)’라 주장하면서 동맹과 함께 세계질서를 주도하고자 한다. 그래서 과거나 지금이나 미국 편에 선 자들은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할 만도 하다.

과연 그런가? 냉전시기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유럽과 일본을 친구로 삼고, 소련과 공산주의를 적으로 돌렸으며, 역사성을 무시한 채 제3세계의 급진 민족주의는 ‘악’으로, 제국주의 부역자 혹은 온건 민족주의는 ‘선’으로 규정했다.

스스로 내세운 대의와는 달리, 미국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선거를 통해 수립된 민주정부를 무너뜨렸고, 제국주의에 부역한 세력 혹은 군부독재도 지지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세우거나 지원한 정부조차 서슴지 않고 제거했다. 표리부동한 것이다.

물론 모든 위협의 배후에 소련과 공산주의가 있다고 믿은 사람들에게 미국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그런 이중적 태도를 보고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독재를 지지하지?’라고 묻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관련된 구체적 사례를 보자. 베트남의 경우다. 아이젠하워는 동남아시아의 연이은 공산화라는 도미노이론을 내세워 미국의 베트남 개입과 지원을 정당화했다. 케네디는 일본제국에 부역한 응엔 디엠의 베트남정부를 ‘동남아시아에서 자유세계의 초석’이라 칭찬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부패와 무능이 드러나고 북베트남의 호치민에게 접근하는 등 디엠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자 군부쿠데타를 부추겨 그를 살해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도미니카공화국을 통치한 미국이 떠나면서 트루히요 독재정부(1930~1961)가 미국을 대신했다. 트루히요는 한때 미국의 냉전정책을 적극 지지하면서 신뢰를 얻었지만 독재와 부패가 극에 달하자 미국은 그의 암살을 도왔다. 선거로 수립된 보쉬정부가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자 미국은 재빨리 등을 돌렸다. 보쉬정부가 군부쿠데타로 무너지고 민주정부 지지자와 군부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자 미국은 도미니카공화국을 아예 점령해버렸다.

한국은 예외였는가? 미국은 온건 민족주의자들과 친일 부역자들이 주도한 ‘신정부(New Government)’ 수립을 적극 도왔다. 하지만 독재와 부패가 도를 넘자 이승만 정권을 버렸다. 그렇다고 4·19혁명을 달가워할 수도 없었다. 혹여 급진 민족주의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이승만보다 더 독립적이고 통일 지향적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쿠데타는 일단 미국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케네디는 박정희의 좌익 전력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 순응하는 ‘힘을 가진 자’를 택했다. 물론 미국의 박정희 지지는 그가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였다.

냉전시대 미국이 국가 혹은 정치세력을 택하거나 버린 기준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미국의 뜻에 ‘순응하는지(subservient to)’ 여부였다. 순응자는 대개 제국주의 부역자거나 독재자, 혹은 그들의 후예였다.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 수호와 패권 추구 뒤에 숨겨진 진실이다. 미국은 그런 태도를 지금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를 참칭(僭稱)하면서 ‘모호하고, 모순적인’ 미국의 안보전략에 동참하지 않으면 마치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도하는 자들은 ‘장두노미(藏頭露尾)’이라는 옛말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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