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 중심 생활 활발해진 로컬텍트
시대정신이면서 지방정부의 생존전략
정주여건 향상으로 공동체 회복해야

▲ 정명숙 논설실장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어린 시절 놀이다. 음악이 멈춘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춤을 추다간 어김없이 아웃 당한다. 음악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발을 떼도 아웃이다. 멈춰 있는 동안 숨을 고르고 온전히 귀를 기울여 다음 음악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음악이 울리고 또 즐겁게 춤을 추려면 멈춤의 순간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멈춤의 시간에 서 있다. 이 멈춤이 블랙아웃(blackout)처럼 혹독하기도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일과(日課 routine)에 느닷없이 생긴 틈이기도 하다. 틈 사이엔 반드시 빛이 새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틈은 균열(crevice)이자 기회(chance)다. 특히 원거리 이동의 위험성이 만들어낸 멈춤, 그 틈에 생겨난 ‘로컬텍트(local+contact)’는 지방정부에 있어 분명 새로운 기회다.

2014년 파리 첫 여성시장이 된 안 이달고(Anne Hidalgo)는 2020년 선거에서 ‘15분 도시’를 공약, 재선에 성공했다. ‘15분 도시’는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주거와 일자리, 문화시설, 쇼핑공간들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교통수단 확보로 이동시간이 단축된 편리한 도시가 아니라 차량 운행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제안이다. 차량이동이 줄어든 생태도시, 찻길을 줄여서 만든 텃밭과 배움의 공간에서 형성된 공동체, 그로 인한 시민들의 건강이 15분 도시의 목표이다.

전 지구적 멈춤은 우리 삶의 변화를 예고하고 또 요구한다.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해도 오프라인이 예전처럼 회복되기 어렵다. 원거리 이동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지난해 3, 4월 유일하게 늘어난 소비분야가 홈어라운드, 집주변 소비라고 한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센터가 분석한 상권유형별 요식업종 소비변화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주거 상권’의 이용건수는 3만7000건으로 전년 동기 이용건수인 2만9000건 대비 24.6% 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관광 상권’ 및 ‘역세권 상권’의 이용건수가 각각 46.1%, 51.1% 줄어든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어느새 생활권 중심으로 움직이는 로컬텍트에도 익숙해지고 있는 우리다.

로컬텍트는 시대정신이면서 동시에 수도권 집중화시대에 지방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이달고 파리시장이 생태·연대·건강이라는 시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15분 도시’를 제안한 것처럼, 로컬텍트시대에 맞는 생활권 중심의 정주여건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가 ‘주민들에게 맞춤형 복지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되찾기만 해도 ‘15분 도시’의 목표 중 하나인 공동체 회복에 의한 연대는 가능하다.

우선 정치인들의 들러리에 머물러 있는 주민자치위원회, 형식적으로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도서관, 놀이에 치중된 문화센터 등은 로컬텍트시대가 아니더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한발 더 나아가 소극적 의미의 어린이 돌봄이 가능해져야 한다. 디지털에 취약한 노인들의 눈과 귀가 되는 기능도 필요하다. 서민들의 문화적 욕구도 다양하게 충족해주어야 한다. 직업에 대한 정보와 일자리까지도 제공해준다면 금상첨화다. 공동체의 중심이자 이름그대로 ‘행(정)복(지)센터’가 된다. 행정복지센터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고급인력도 수두룩하다. 단순히 민원서류를 발급해주는 곳이 아니라 단체장의 시정철학을 실천하는 최전선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로컬텍트시대 삶의 질에 집중하는 15분 도시, 행정복지센터의 제자리찾기에서 시작할 수 있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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