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11)언제 누가 어떻게 그렸나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 위해선
시민 관심·행정 뒷받침 필요”

▲ 반구대암각화에서 서로 다른 양식의 여러 표현물이 중복된 그림들.

제1제작층 고래잡이배·고래·사람
제2제작층 작은 크기 초식·육식동물
제3제작층 산양·사슴 초식동물 주류
제4제작층 암각화 대표 고래로 구성
제5제작층 호랑이·멧돼지·범류동물
시간적 간격에 대해선 알수 없지만
각 시기마다 풍요 기원 염원 등 담겨

반구대 암각화의 최초 제작은 학계 전반의 흐름상 대체로 7000년 전 시작된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50년 전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 당시에는 암각화에 대한 국내 연구가 미진 해 청동기와 철기, 혹은 삼국시대 등으로 제작시기가 다양하게 추론됐다. 시간이 흘러 역사 이외 지질, 화학, 기후, 해양생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암각화 연구에 가담하면서 최초의 제작연대를 신석기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굳어진 것이다.

바위그림 갯수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조사기관이나 형태 인식의 이견에 따라 240여 점부터 많게는 360여 점까지 다양하다.

다만 대부분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갖는 의견은 그 모든 그림들이 어느 시기에 일률적으로 제작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반구대 암각화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든걸까.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의 이하우 박사는 여러 학술총서와 논고에서 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는 반구대 암각화의 특정 위치에서 서로 다른 양식의 표현물이 복잡하게 중복된 부분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전체 바위면에서 대략 15군데 정도 된다. 이후 중복된 이미지를 하나씩 따로 떼어 살펴봤다. 이후 형태적 측면에서 표현상 속성이 서로 다른 양식을 유형별로 다시 분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 박사는 반구대 암각화는 최초 제작 이후 시간차를 두고 최소 다섯 차례에 걸쳐 그림이 덧새겨지는 작업이 반복되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초의 제1제작층은 가느다란 선각으로 묘사된 선새김 층이다. 몇 척의 고래잡이배와 고래, 작살을 든 사람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전반적으로 고래사냥과 관련한 어로활동이 잘 반영돼 있다.

제2제작층은 작은 크기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고루 섞여 있다. 이 시기의 선 새김은 동물의 외양적 생김새를 충실하게 묘사했다. 대상과의 유사율에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이는 주술의 행태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 중복된 바위그림(확대).

제3제작층은 산양,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이 주류다. 면 새김으로 제작된 여러 동물 사이에서 간혹 작은 멧돼지나 두세마리 늑대와 같은 것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두 마리 이상의 동물이 서로 짝을 지어 나온다. 자연의 순환과 풍요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제4제작층은 반구대 암각화를 대표하는 고래로 구성된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고래 그림은 이전단계의 여러 표현물을 크게 잠식하고 있다. 이 박사는 어로활동의 성공은 물론 죽임을 당한 고래의 회생까지 동시에 기원하는 층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외에 거북, 가마우지, ‘듀공’처럼 생긴 동물도 등장한다.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마지막 제5제작층은 선 새김의 호랑이, 새끼를 밴 멧돼지와 사슴, 범류동물로 구성된다. 복부에 줄무늬가 있는 고래도 이 시기에 속한다. 도식적이며 정형화 된 이 시기는 존재감이 확실한 동물이 층을 이룬다. 특히 자연생태적 표현과 차별되는 격자문 선각이 새끼 밴 동물에 한해 확인된다. 수렵에서의 금기와 관련해 신성시하는 동물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이 박사는 ‘1~5 각 단계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은 황상일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가 고 울산만의 지형적 변화를 정리한 논고에서 일정 부분 해소된다.

황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지금으로부터 대략 7000년 전 시작돼 3000년 전까지 제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황 교수는 당시(홀로세) 울산 해안환경과 해수면의 변화를 기반으로 “선사인의 고래잡이는 ‘직접적 포획이 아니라 얕은 바다로의 몰이기법과 그로 인한 고래 스스로의 좌초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반구대 암각화는 그 같은 옛 울산만의 지형 변화를 알려주는 열쇠”라고 밝혔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이혜은 동국대 교수 ‘세계유산의 매력’ 특강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보존운동이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지난달 31일 시청에서 이혜은 (사진)동국대 명예교수의 학술특강을 마련했다.

이 교수는 ‘세계유산의 매력’ 제목의 강연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구성과 등재 요건, 등재 과정, 전 세계가 왜 그토록 세계유산 등재하려 하는 지, 반구대 암각화의 마지막 최종 등재를 위한 과제 등을 알려줬다.

유네스코가 시행하는 유산 제도는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기록유산’으로 구분된다.

그 중 ‘세계유산’은 유산의 특성에 따라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나뉜다.

세계유산 등재 유형에 따라 구분되기도 하는데 대상지가 한 곳이면 ‘단독유산’, 여러 곳에 분산돼 있으면 ‘연속유산’(한국의 산지승원·한국의 서원)이다.

또 단일 국가가 등재 신청을 하면 ‘단독유산’, 2개 국가 이상이 공동으로 신청하면 ‘초국경유산’(포르투갈·스페인의 코아계곡 선사시대 암각화)이 된다.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는 세계유산 중에서도 문화유산이자 단독유산에 속한다.

▲ 이혜은 동국대 교수

이 교수는 유네스코의 ‘위험에 처한 유산’을 사례로 들어 울산의 맑은물 확보문제와 복잡하게 얽힌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문제를 우회로 설명하기도 했다.

2004년 등재 된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2006년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올랐다. 계곡에 교량을 놓으려는데, 자칫 유산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디자인이 제안됐고,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정부의 다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유산은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이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는 해당 유산이 전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지니는가를 증명하는 전문가적 접근이 우선이지만 이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와 이를 위한 행정 및 정치적 뒷받침이 함께 맞물려야 가능하다”며 “반구대 계곡을 가까이 둔 울산시민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계유산 전문가인 이혜은 교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하 이코모스) 종교제의유산위원회(PRERICO) 위원장, 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추진위원회 학술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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