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환 사회부 기자

“탄신 100주년도, 광복회 설립 100주년도 조용히 지나갔지만, 올해 순국 100주년엔 꼭 의미있는 성과가 있길 바랍니다.”

지난 1일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1885~1921) 의사의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울산의 각계 인사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고헌의 증손 박중훈씨가 한 얘기가 마음을 울렸다. 일제에 고통받는 2000만 민족과 나라 안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은 물론 식솔들을 위해 남겨뒀어야 할 전 재산까지 광복군 활동자금으로 바친 애국지사를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대한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됐기 때문이다. 고헌은 김좌진 장군이 부사령으로 활동했던 광복회의 초대 총사령이었다. 대한민국 최초 법조인(판사)이었던 그는 대지주 집안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엘리트였지만, 심성은 대쪽 같은 결기가 있어 1910~1920년 일본의 폭압적인 무단통치 속에서도 독립투사들의 무장항일투쟁을 이끌었다. 부산지법 판사들은 그런 그를 “법을 공부해 나라와 민족에 이로운 일을 못할 바에야 판사란 직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여겼던 것”이라고 평했다.

개인이나 가족보다 고통받는 민족을 생각하며 살았던 고헌의 숭고한 삶은 우리가 그를 울산의 인물로 기억해야 할 이유다. 고헌은 국내 60여곳, 만주와 중국까지 지부를 갖추고 항일투쟁에 나섰지만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김좌진 등 다른 독립열사에 비해 인지도가 현저히 낮다. 시민단체 설문조사 결과 고헌에 대해 알고 있는 울산 시민은 17%, 전국적으로는 단 1%에 불과했다.

정부가 1963년 고헌에게 추서한 건국훈장의 서훈 등급 역시 고작 3등급(독립장)이다. 고헌의 인지도가 낮은 이유는 독립자금을 다루는 일을 많이 한 고헌의 활동상이 비밀에 부쳐져 남은 기록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친필 4점, 사진 1장 정도만 남아 있다. 다행인 건 수년 전 추가로 서훈 등급이 올랐던 유관순 열사 역시 새 자료보다는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던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수년 전 기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국가안위노심초사’에 찍힌 장인(손도장)에 기자의 손바닥을 대보며 그의 손이 얼마나 작은지, 당시 서른 한살에 불과했던 안 의사의 마음을 짐작하며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다.

고헌의 사진 역시 그런 감동을 준다. 당시 흰 죄수복을 입고 수감된 고헌의 옆모습을 보면 그는 어깨하나 구부리고 있지 않다.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을 알고서도 일제 앞에선 당당하고 의연하게 맞서는 듯 가슴을 펴고 있다. 고헌을 알리는데 이렇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울산시가 북구 송정동의 고헌 생가를 매입해 2007년 복원 정비했고, 그 일대에 박상진 호수공원을 조성하고, 최근엔 송정역의 역명을 박상진역으로 짓는 등 다양한 인물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올해 8월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기념주간, 특별전, 창작뮤지컬, 다큐멘터리, 각종 공모전 등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진심어린 관심이다.

최창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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