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확진자와 밀접접촉자이므로, 2주간 자가 격리하셔야 합니다.” 보건소의 전화에 난감하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읽을거리들을 챙긴다. 이전에 읽었던 시집들과 함께. 머리가 복잡한 만큼 위안이 될 무엇이 필요하다. <행마법>(강세화, 서정시학)은 특히. 딱히 자연을 노래해서만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나 인공의 냄새가 나는 것들보다는, 다소 투박해도 꾸밈없는 대상을 노래한 시편인 까닭이다. 그런 시편들이 조바심 내며 동동거리던 날들을 여유롭게 보듬는다.

나는 바둑을 전혀 모른다. 한 때 유행했던 ‘알까기’나 ‘오목’정도만 겨우 알 뿐이다. 행마법이 바둑 용어라는 것도 시를 읽으며 익힌다. 이 시는 확대한 모눈종이 같은 바둑판에 흑백의 알로 다투는 두뇌싸움을 삶에 비유한 작품이다. 누구라도 하는 생각을 이렇듯 가지런하게 풀어내다니, 행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고, 더러는 한숨을 내쉰다. 공감이 혼자놀이로 표현된 것이다.

다른 시편들도 마찬가지다. 어렵지 않고 교훈적이지 않은데도 나의 지난날을 톺아보게 된다. ‘물’의 의미를 제대로 읽는다. 물의 성질을 제대로 몰라 구설에 휘말리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아낀다는 것’이 ‘잔정’과 ‘꽃피는 마음’이라는 생각도 한다.

모든 시들이 속삭이는 것 같다. 귀를 기울이고 싶은 나직한 음성으로. 풀꽃이며 노을이며 하늘, 강의 풍경이 저절로 읽힌다. 나도 모르게 ‘좋다’며 양손으로 가만히 가슴을 누른다. 늘 보아왔던 풍경들을 지나쳐 왔음도 새삼 깨닫는다. 더불어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은 반드시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리라 다짐한다. 뭔가 억울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 생각날 만한 시들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어쩌면 이리도 적정한 무게와 부피로 빚었을까. 번뜩이는 무엇을 그리기보다 시인은 둥글음 속에서 예리한 별점을 읽어내는 안목을 지닌 듯하다. 오래 된 연인을 만난 듯 기대고 싶은 어깨처럼 편하게 읽히는 시편들.

그럼에도 시인은 왜 하필 자성의 시를 표제작으로 정했을까? 시인의 자성에 빙의되는 표제작 ‘행마법’의 한 구절에서 이유를 찾는다.

왜? 내 바둑은/ 손 빼야 할 자리에 미련을 못 버리고/ 판판이 자충수를 두게 되는지. 장세련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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