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극단으로 지나치게 쏠린 정치로
부동산정책·사법개혁 등 우왕좌왕
균형잡힌 중용의 자리로 회귀를

▲ 남호수 동서대학교 융합전자공학과 교수

회귀본능이란 동물, 특히 어류가 태어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성장한 뒤, 산란을 위하여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습성을 일컫는다. 사람의 경우엔 뇌에 저장된 자료에 의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귀소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동물에게선 온도와 냄새(후각기억), 지형(위치기억)과 태양의 위치를 파악해 방위를 인지하는 태양컴퍼스 등의 기능이 발휘되는데, 일부에서는 동물의 회귀 행동이 각인에서 비롯된다고도 분석한다.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져 4년을 보낸 연어가 산란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저서 <귀소본능(歸巢本能)>에서 “수많은 동물의 새끼가 그렇듯, 그 당시 나 역시 탐색하고 방황할 필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훗날 내 인생은 앨버트로스와 젊은 연어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녀석들은 자신이 살고 있던 고향을 떠나 방황하다 어른이 돼서야 기억 속에 각인된 고향이나 그 부근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나를 묶어둔 어린 시절의 기억은 빛이 바래지 않았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귀소본능을 갖고 있다는 인문학적 고백이다.

회귀본능이 실현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문적 분석기법으로 자리잡은 경우도 있는데, 통계학에서 관찰된 변수들에 대해 두 변수 사이의 모형을 구한 뒤 적합도를 측정해 내는 분석 방법인 회귀분석(回歸分析)이 그 예이다. 회귀(regress)의 원래 의미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부모의 키와 아이들의 키 사이의 연관 관계를 연구하면서 부모와 자녀의 키 사이에는 선형적인 관계가 있고 키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보다는 전체 키 평균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으며, 이를 분석하는 방법을 ‘회귀분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경험적 연구 이후, 칼 피어슨은 아버지와 아들의 키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함수 관계를 도출하여 회귀분석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립하였다. 사실 키가 매우 큰 농구선수 부부의 아들이 키가 크기는 하겠지만 최극단의 키를 갖지는 않는 것이 상식이다. 끊임없이 평균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

인간에게도 회귀본능이 잠재되어 있긴하나, 인간은 쉽게 길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이정표를 참조하지 않고서는 멀리까지 갈 수 없다. 아마도 네비게이션이 없다면 도대체 어디를 함부로 갈 수 있을까. 우리는 궤도 적분(path integration)이라 일컬어지는 잠재되어있는 복잡한 수학적 연산 과정에 의해 짧은 거리 정도는 눈을 감은 채 비교적 똑바로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짧은 거리’, 그리고 ‘비교적’일 따름이다. 사하라 사막의 개미나 꿀벌의 지름길 알고리즘에 의한 최소거리 이동 경로에 의한 귀소에 비하면 참으로 낮은 수준의 감각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생물과 인간까지도 생명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은 얼마나 발달하여 있느냐는 정도의 차이이지 잠재되어있고, 지향하는 것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근 또 한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그간의 정치적 이슈가 되었던 정책들에 대하여 논란이 적지 않다. 부동산 정책, 사법개혁, 코로나 방역 대책, 에너지 정책, 대북 정책.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헤매고 있다. 단기 또는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답은 분명히 있을진대, 진영에 따라 너무나 극단으로 다른 접근에 갑갑함이 치솟는다. 정치에서 극단의 영역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우리 정치의 오리진(origin)은 어디인가. 우리는 그곳으로 가고 있는가. 극단과 극단이 합쳐져서 또 다른 극단이 생성되지는 않는다. 다시 평균, 이것은 본질이고 중용이고 바람직한 자리일 수 있기에 그곳으로 회귀하길 바래본다. 상식과 이치가 올바르게 자리 잡은 사회 말이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융합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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