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최근 시작한 엘지전자 산학연구프로젝트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근미래 주방가전제품 개발이 주제다. 연구에서 어느 하나 빼먹을 수 없지만 제일 중요한 워딩은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단어다.

라이프 스타일이 뭐지? 삶의 형태나 방식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은? 철학적 사유를 넘어, 관찰의 대상으로 보면 의식주다. 우리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개발할 때, 프로세스 맨 앞단에서부터 관찰하고 취합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필수요소가 라이프스타일이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게 라이프스타일인데, 요즘 유독 호들갑 떠는 것은, 변화의 폭과 속도가 굉장해서다. MZ세대라는 거창한 명칭까지 붙은 이 요주의 관찰 대상은 현재의 20~30대다. 이제부터 미래를 장악하는 대세들이다.

의=옷, 입는 것, 패션의 변화

닳고 닳은 키워드다. ‘개성을 중시한다’거나 ‘이런 저런 스타일을 선호한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필자가 집중하는 변화 양상은 MZ세대가 패션에 시간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옷을 살 때, 오랫동안 입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과 내구성 높은 품질이 중요했다. 이제는 시간성, 즉 언제 디자인되었는 지가 중요하다. 올해 여름에는 문자 프린트가 강조된 하얀색 오버사이즈 티셔츠가 유행이라 치면, 스트리트 브랜드부터 명품 매장까지 해당 스타일이 좍 깔린다. 혹자는 이 유행에 대해 과잉소비와 환경문제를 들어 부정적 견해를 내지만, 필자는 원인과 해결점을 달리 두며 풀어갈 문제라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해마다, 계절마다 트렌드가 바뀌는 이 경향의 확립에는 SNS의 몫이 크다. 저마다 특정시간과 장소를 인증하는데 패션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이 어느새 패션산업의 플랫폼이 된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유행 안 타는 패션이란 선전은 거짓이다. 70% 할인된 가격표 보고 “개이득!”을 외치며 명품아울렛에서 구입한 이월상품은 MZ가치로 보면 내가 손해일 수도 있다.

식:음식의 변화

음식은 맛있으면 그만이었다. 사실 맛을 최고로 치는 맛집 선택의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다만 음식이 놓이는 접시, 분위기, 인테리어 같은 다른 감각의 역할비중이 심각하게 커졌다. 음식을 대하는 우리 태도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미각에 더해, 시각, 청각, 촉각, 후각까지 오감을 아우르는 음식이 되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먹기 전에 사진 찍는 것이 당연한 통과의식이 됐다. 성지처럼 맛집을 순례하고, 사진·영상에 담아 세상에 알리며 진짜 오감을 즐기는, 먹는 것에 진심인 세대가 MZ다. 먹는 것이 배 부르고 맛있으면 그만이 아니라, 즐기고 소통하는 가치임을 증명하고 있다.

주:거주의 변화

슬세권, 스세권. 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거리, 스타벅스가 가까이 있는 거리를 뜻하는 이 단어들은 MZ세대가 중요시하는 주거 선택의 척도를 정확히 보여준다. 여전히 교통·교육 인프라가 부동산 입지의 큰 부분이긴 하나, 삶의 질을 엄청 따진다. 사실 변화의 폭은 입지부터 인테리어, 가전제품과 소품까지 깨알 같다. 주거의 크기와 상관없이 집안 요소들을 하나의 스타일로 통일하는 경향은 요즘 나오는 냉장고 세탁기, TV는 물론 밥솥마저 가구 같은 디자인을 갖게 만들었다. 온갖 편의제품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선택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용도에 어떤 성능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내 삶을 반영하는가, 얼마나 내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가가 됐다.

이렇게 의식주로 나누어 삶의 변화를 분석해 보아야 ‘아 이런 변화가 생기고 있구나’를 확인하게 되지만, 사실은 모르는 사이 우리 스스로가 변하고 있다. 멀쩡한 몇년 전 옷이 새삼 꺼내어 입기 망설여지고, SNS 속 사진을 넘기며 골목골목 맛집을 고르고 찾아 인증샷 찍고,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 사면서 올려놓을 탁자가 고민된다면 당신은 이미 MZ세대 라이프스타일이다. 나이 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 21세기 한가운데의 라이프 스타일은 사물의 가치에 시간성을 더하고 오감을 즐기며 우리와 소통하는 중이다. 진심을 지향하는 세상 멋진 변화다. 라이프스타일, 우리말로 간단하게 ‘삶’.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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