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유족 20명 제기한 소
재판부, 국가면제 적용해 각하
정부 대응논리 뒤틀릴 우려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사법부가 유사한 소송에서 정반대 판결을 하면서 위안부 판결에 따른 한일갈등을 풀려는 정부의 고민이 더 복잡해지는 형국이다.

한일관계를 고려해 일본 손을 들어준 판결이 정부가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줄 가능성이 생겼지만, 엇갈린 1심 판결에 오히려 정부의 대응 논리도 꼬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오전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한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는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일본 정부 손을 들어줬다.

반인도적 범죄행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 1월8일 판결과 다른 결론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당시 김정곤 부장판사)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방법도 마땅치 않아 한일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면서 위안부 판결에 대해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 이번 2차 판결은 한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이 있다.

재판부도 판결이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 등 정부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국가면제에 대한 예외를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국제관습법보다 확대할지에 대해 “외교부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외교 정책과 국익에 잠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피고(일본)에게 국가 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이미 대한민국과 피고 사이에 이뤄진 외교적 합의의 효력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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