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한 울산 시민장애인 주간보호센터장

장애인주간보호센터(이하 ‘센터’) 이용자가 생일을 맞아 카페를 이용한 적이 있다. 메뉴판의 음료를 설명하는 데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센터 이용자들은 카페메뉴를 읽지 못하거나, 설사 메뉴를 읽어도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카페메뉴가 그림으로 되어 있다면 훨씬 이해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문자가 생겨나기 전에 그림으로 소통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사람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최초의 방법은 “말”이었다. 말은 편리했지만 기억하기 어려웠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을 대체할 소통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그림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그림문자이다. 현재에도 그림은 다양한 곳에서 편리한 소통수단으로 사용된다. “화장실, 비상구” 등을 읽을 수 없어도 그림만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은 공항에 그림문자(픽토그램)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림은 인류의 기본적이면서 가장 쉬운 언어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아동, 외국인 등도 문자로만 된 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는 보완대체의사소통으로서 말이나 문자로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2019년 서울 마포구에서는 마을에 있는 각종 시설에 AAC를 배치하고 AAC존을 만들었다. 울산에서도 2020년 쉬운 정보제공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발달장애인 관련 기관들과 울산대학교 학생들이 신한금융그룹의 지원을 받아 에코백에 발달장애인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그림으로 바꾸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2020년 1월에 시작된 사회적약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기 위한‘알기쉬운 마을 만들기’사업은 기존 문자 메뉴판에 그림을 추가하여 알기쉬운 메뉴판을 제작하는 사업이다. 지역 카페에 홍보하고 알기쉬운 메뉴판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발달장애인은 알기쉬운 메뉴판을 검토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 문화와 세대 차이로 정보가 어려운 아동과 어르신들도 검토에 참여했다. 검토과정을 거치면서 알기쉬운 메뉴판의 글과 그림은 더욱 이해하기 쉽게 바뀌었다.

검토를 마친 알기쉬운 메뉴판은 18개의 카페에 전달되었다. 울산시청점 ‘아이갓에브리씽’은 알기쉬운 메뉴판 5호점으로 2020년 5월에 설치되어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또한 울산대학교 11호관 카페에는 알기쉬운 메뉴판을 기반으로 한 키오스크를 2021년 3월부터 운영 중이다. “장애인에게 편리하면 모든 사람에게 편리하다”는 말이 있다. 알기쉬운 메뉴판은 정보약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사용하기 편리하다. 새로 나온 음료나 어려운 음료를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이 복지기관을 벗어나 지역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 주민과 자주 만나기를 기대한다. 알기쉬운 마을 만들기는 한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장애학생을 둔 부모님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지역주민을 만났다가 무안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유치원생 자녀를 데리고 있던 지역 주민은 장애학생을 보고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장애인이 어렵고 낯선 사람들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따뜻한 밥이 되는 꿈”에서 저자는 짓다와 만들다의 차이를 설명한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일들은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짓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생에서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수 없기에 시간과 정성이 들어 ‘지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가족 간의 화목, 친구 간의 우정, 사제 간의 신뢰가 그렇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다르고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사회에서 밀려나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우리와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겠다. 김중한 울산 시민장애인 주간보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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